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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정채원 시인 / 케미스트리

by 파스칼바이런 2021. 10. 29.

정채원 시인 / 케미스트리

 

 

자발적으로 두 개의 원소로 분해될 수 없는

물처럼 두 사람은 흐른다

 

음극과 양극 사이에 격막을 두고

둘은 서로를 밀어내야만 존재할 수 있는

자석의 같은 극이었을까

너무 닮아 서로를 모욕하는 사이처럼

 

외면한 채 마주보는 심장은

서로에게 둥그런 피를 돌리지 못하고

 

남들에겐 보이고 싶지 않은 것을

자신도 보고 싶지 않은 것을

기어이 보고야 마는 눈

오후의 뇌 속에는 어떤 뾰족한 물질이 흘러나오는 것인지

 

성공한 듯 보였으나

결과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화학 실험처럼

끝내 수소와 산소로 돌아가지 못하는 물속에서

한동안 전류가 저릿하게 흘러갔을 뿐

 

숙성도 되기 전에 변질된 와인을 맛보며

이 맛이 아닐 텐데

이 향이 아닐 텐데

코르크 마개 탓부터 하는 사람들

 

화합하지 못한 이유와 결별하지 못한 이유는

어떤 화학식으로 설명될 수 있을까

번번이 같은 매듭에서 낯익은 벨이 울리고

실패해야 하는 이유, 실패해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

함께 숨 쉬는 물속에서 명징한 기포가 발생하지 않고

멜로디처럼 탄식처럼 전류가 헛되이 흐르다 멈추는 이유

 

부서진 계단을 지나

유리조각 박힌 꽃담을 지나

물은 오늘도 흘러간다

 

웹진 『시인광장』 2021년 8월호 발표

 

 


 

정채원 시인

1996년 《문학사상》 신인상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슬픈 갈릴레이의 마을』(민음사, 2008)과 『제 눈으로 제 등을 볼 순 없지만』(문학동네, 2019) 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