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채원 시인 / 케미스트리
자발적으로 두 개의 원소로 분해될 수 없는 물처럼 두 사람은 흐른다
음극과 양극 사이에 격막을 두고 둘은 서로를 밀어내야만 존재할 수 있는 자석의 같은 극이었을까 너무 닮아 서로를 모욕하는 사이처럼
외면한 채 마주보는 심장은 서로에게 둥그런 피를 돌리지 못하고
남들에겐 보이고 싶지 않은 것을 자신도 보고 싶지 않은 것을 기어이 보고야 마는 눈 오후의 뇌 속에는 어떤 뾰족한 물질이 흘러나오는 것인지
성공한 듯 보였으나 결과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화학 실험처럼 끝내 수소와 산소로 돌아가지 못하는 물속에서 한동안 전류가 저릿하게 흘러갔을 뿐
숙성도 되기 전에 변질된 와인을 맛보며 이 맛이 아닐 텐데 이 향이 아닐 텐데 코르크 마개 탓부터 하는 사람들
화합하지 못한 이유와 결별하지 못한 이유는 어떤 화학식으로 설명될 수 있을까 번번이 같은 매듭에서 낯익은 벨이 울리고 실패해야 하는 이유, 실패해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 함께 숨 쉬는 물속에서 명징한 기포가 발생하지 않고 멜로디처럼 탄식처럼 전류가 헛되이 흐르다 멈추는 이유
부서진 계단을 지나 유리조각 박힌 꽃담을 지나 물은 오늘도 흘러간다
웹진 『시인광장』 2021년 8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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