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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영찬 시인 / 올리브 동산의 7월 칠석七夕

by 파스칼바이런 2021. 10. 29.

김영찬 시인 / 올리브 동산의 7월 칠석七夕

 

 

‘그 여름에 리키아로 떠나는 건 아니래’

ㅡ故 김희준의 시 「7월 28일」중에서

 

 

그 여름의 7월은 김희준 시인에게 태양력에서 녹아내린 밀가루반죽

올리브 동산의 급경사면이었을까

 

서로의 발톱을 깎아주다가

몸에 새긴 패랭이꽃

꽃 모양이

입체적이 아니라고

서로의 모서리가 아프도록 뾰족한 말을 주고받다가

웃기도 하다가

 

그러다가 사슴뿔을 새긴 허리 아래 문신이

외벽을 타고 허공으로

파고들던

 

계절이 아닌 여름이 비를 뿌리고 오다가 꽃들이

저물기엔 너무

이른

밤으로 멀리 떠나는 심야의 불빛처럼 포말하우트의 농무처럼

몽롱한 안개 속에 꺼내든 시는 발가락이 갯벌에 닳는

막연한 기분

마틸다,

어서 짐을 싸자 마틸다

순결한 키스는 열 살 때 상처 밖에 없는 파과처럼 파삭파삭

 

눈두덩에 접혔다

그랬다

 

금기된 사랑이라 발설하지 못했던 7월이 기승을

부렸다

라고 고백한 것도 7월

 

방황하는 너 영영 발음되지 않는 이름을 지우개로 지우기 위해

마틸다, 너는 떠났다

 

그 여름에 리키아로 떠나는 건 아닌데 아니었는데, 아니었는데

 

계간 『시와 편견』 2021년 여름호 발표

 

 


 

김영찬 시인

충남 연기에서 출생. 외국어대 프랑스語과 졸업. 2002년 《문학마당》과 2003년 《정신과 표현》에 작품들을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불멸을 힐끗 쳐다보다』와 『투투섬에 안 간 이유』가 있음. 현재 웹진 『시인광장』 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