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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황주은 시인 / 풀밭 위의 호저豪猪들

by 파스칼바이런 2021. 10. 31.

황주은 시인 / 풀밭 위의 호저豪猪들

 

 

공원에서 사람들이 왁자지껄 파티를 하고 있었어

그들을 피해 지나가는데

우리 애저를 끌어다 잡아먹으려는 거야

이건 내 거야, 저 아래 먹을 게 많잖아, 소리쳤어

 

그랬더니 풀밭 위로 코모도도마뱀들이 몰려와

오히려 사람들을 잡아먹었어

나를 힐끗 보더니 그냥 가더라고

왤까

 

원체 맛없게 보였겠지

우리는 변신의 귀재, 선인장도 되고 암몬조개도 되잖아

더군다나 나는

 

사람 소리를 흉내 낼 줄 알잖아 하필이면

인간 흉내를 내다니

그게 측은해서 살려줬을 거야

 

다각형 장미가 가득한 풀밭

풀밭엔 잘려진 꼬리들

창공엔

어디론가 날아가는 애저의 다리들

 

버블버블 언빌리버블

 

공원 구석에는 뼈와 해골이 정답게 뒹굴고

둥둥 떠가는 도마뱀 눈알들

 

온몸에 가시를 세우고 우리는

엎드려 풀밭을 먹어치우기 시작한다

 

인간의 비린내가 목구멍 가득 번진다

 

웹진 『시인광장』 2021년 8월호 발표

 

 


 

황주은 시인

경북 예천에서 출생. 2013년 《시사사》신인상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