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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예강 시인 / 꽃의 마음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10. 31.

김예강 시인 / 꽃의 마음

 

 

생일꽃을 사러 들린 아름다운꽃집에는

꽃의 발을 마른 수건으로 싹싹 눌려 닦고 있는

꽃집주인이 있다 아름다운꽃집 주인아주머니는

꽃을 손질하는 사이 꽃이야기를 전하곤 한다

꽃이 왜 아름다운지 아세요?

아름다운꽃집 주인아주머니는

꽃의 발을 가지런히 모아 싸며 그게요

아름다운꽃집 주인아주머니는 그랬다

없는 마음이라 그래요 꽃은요

안으면 안은 사람의 마음이 되는 거잖아요

할머니께 꽃을 안겨드리면 할머니의 마음이

되잖아요 아이에게 안겨주면

아이의 마음이 되잖아요

아름다운꽃집 주인아주머니는 꽃나라의 마법사

꽃엄마처럼 꽃자랑을 한다

나는 없는 마음의 꽃이란 말이

먼 바다 앞에 서 있는 듯하여 아름다운꽃집

주인아주머니가 포대를 감싸듯 꽃들을 포장지로

두르는 손길 바라보다 나는 마음이 있어 꽃이

못 된다 싶다가 꽃은 마음을 지우는 것이다 싶다가

지운 자리에 꽃이 피었다 지는 것이다

싶다가 그런 생각 등에 잠겼다가 아기를 받아 안 듯

아름다운꽃집 주인아주머니가 건넨

생일꽃을 안고

 

 


 

 

김예강 시인 / 노인의 잠

 

 

열두 겹의 꽃잎 안에 노인이 잔다

 

한 겹의 디저트 카페는 열 개의 고구마를 굽는다

한 겹의 바다는 서퍼들의 춤이다

한 겹의 바람은 노인을 태우고 철길을 달린다

한 겹의 잔디밭은 철거된 옛집을 아직 세우고 있다

겹겹의 길모퉁이 모과나무를 심고

피지도 않을 꽃을 기다린다

노인의 방으로 햇살이 기웃거리다 간다

노인은 낫자루를 들고 잔다

겹겹의 꽃잎이 생생하게 달려 있다

집 안에 있으나 집을 찾아 집을 떠나는 노인의 잠

 

ㄱ자로 굽은 등을 침대에 붙이고

잔다 낫자루처럼

 

낫자루를 쥔 노파의 팔이 언뜻언뜻 밭고랑을 멘다

 

파도가 혀를 말며 달려와 노인이 파도타기를 한다

손에 낫자루를 들었다 집과 전투하고 밭일과 전투 중이다

예비군 바지를 입고 전투 중이다

낫자루를 들고 파도타기를 한다

 

노인이 잔다

기차가 달려와도 노인이 잔다

낫자루를 들고 노인이 잔다

 

문을 두드리는 아이들

닝닝닝 텃밭을 맴돈다

서너 마리 벌떼들과

노인은 잔다

 

 


 

 

김예강 시인 / 초면

 

 

초면에 물컵을 떨어뜨렸다 들고 있던 물컵의 작약이 흉터를 예감하며 저편 작약의 없는 손을 잡으러 한다 빗물이 창문에 남겨진 어제의 눈동자를 조용히 지우며 간다 이럴 땐 어제의 내부는 겹꽃 같아서 영혼이 어디론가 자꾸 숨는다 싸늘한 골목의 등은 밤사이 피를 데우려다 아침을 맞이하곤 한다 골목 안 담장에 길없음이라 쓴다 갈팡질팡하던 아침이 등이 휜 고양이가 곧 얇고 유연한 새 골목을 끌고 오는 것을 우두커니 바라본다 어디선가 들은 희미한 노래가 등 뒤에서 들린다 조금 자란 손톱을 들여다보다 손금이 어디까지 흘렸는지 생각한다 손바닥은 번개의 발자국이 새겨져 있다 내 안의 열에 내가 데인 자국이다 우리는 초면인데 애인이라 한다 우리는 초면인데 적이라 한다 나는 꿈속인데 느닷없이 사랑하는 말을 한다 고양이 울음이 밤을 서성이다 창문을 두드리고 간다 초승달 속에 오래전 내가 서성이던 골목.

 

 


 

김예강 시인

1961년 경남 창원에서 출생. 부산교육대학교 및 同 대학원 졸업. 2005년《시와 사상》신인상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고양이의 잠』(작가세계, 2014), 『오늘의 마음』이 있음. 현재  『시와 사상』 편집장이며 시울림과 시인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