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시인 / 아버지 형이상학
대저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누구더라도 삼가 조의를 표하는 것은 영원한 죽음이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모르셨을 리 없다 몰락해주리라, 자발적 몰락 의지가 유일한 수순인 것 동일한 것이 영원히 반복되어도 봄 여름 가을 겨울 똑같은 순서로 영원히 반복되어도 영원히 반복해서 살아주리라 영원히 반복해서 기꺼이 몰락해주리라 아버지가 평소 안 하셨을 리가 없다 하늘이 부정되는 지역, 하늘이 하늘이 부정되는 것 말고 더 가르쳐주지 않았을 때 영원한 몰락에의 의지가 유일한 수순인 것을 아버지가 모르셨을 리 없다 만나보자~ 그때 그날 천국에서 대저 지상에서 부르는 마지막 맹세, 만나보자~ 아버지가 말하셨을 리 없다 아버지의 아버지들은 어디 갔나, 아버지는 영원히 되풀이해서 몰락해줄 것을 요청하셨다 아버지를 믿는다. 몰래 돌아가실 리 없는 아버지시다.
박찬일 시인 / 두 마리의 사람
사람 속에 개가 있다. 개가 나서기도 하고 사람이 나서기도 한다. 개와 사람은 만나지 못한다.
개 속에 사람이 있는 경우도 만나지 못한다.
개가 사람이 되기도 하고 사람이 개가 되기도 하나 함께 있지 못한다. 개로 사람을 방문하지 못하고 사람으로 개를 방문하지 못한다. 별개이다. 개별이다.
개에 대한 기억도 없고 사람에 대한 기억도 없다. 별개의 방에서 개는 개를 추억하고 사람은 사람을 추억한다.
죽어서 하나가 되지만 개였던 줄 모르고 사람이었던 줄 모른다. 개로 죽으면 갠 줄 알고 사람으로 죽으면 사람으로 안다. 개와 사람이었던 줄 모른다.
박찬일 시인 / 수면사망의 수모
수모는 계속된다, 잠인 줄 알았으나 잠이 아닌 것. 본인만 모르고 다 아는 사실 늘 죽기에 충분한 나날들이었으나 당사자가 될 줄 몰랐다. 당사자이면서 정작 당사자는 모르는 게 수모 아니겠어요? 이게 수모 중의 수모 아니겠어요?
나날을 자발적 몰락의지에 충만하게 살자. 수면사망의 수모에서 벗어나는 길이 사망을 덧없게 하는 방식 아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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