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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오선덕 시인 / 둥지를 떠난 새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11. 2.

오선덕 시인 / 둥지를 떠난 새

 

 

마를 날이 없는 날개를 가진

새들의 저녁 식사는 언제나 소박했다.

 

여물지 않은 어린 새들의 부리는

날밤을 쪼아 댔다.

 

식탁 위 텅 빈 접시에는

여린 부리의 파편과

깨진 밤의 조각이 쏟아졌다

 

우리는 서로의 말을 모릅니다.

모른 척 합니다.

 

각자 생존의 법칙은 은밀하게

어디에서나 허용되었다

 

닳아서 보이지 않는 지문은

써보지 못한 대리석처럼 반들거렸다

 

달빛마저 지워버린 밤의 적막

날갯짓도 없이 새들이 떠났다.

 

우리는 서로의 몸짓을 모릅니다.

모르는척한 게 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듬지에서 들리던

파도소리도, 새들의 노랫소리도

사라진 이 계절

 

이 계절의 이름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하나

 

 


 

 

오선덕 시인 / 스무살 카인

 

 

어디서 봤더라

기시감은 과거로의 회귀이다

매일 지면을 달구는 사진들이 팔십 년 광주다

 

그들은 무뎌지길 기다리는 것일까

시간이 흐를수록

시선은 시간의 바깥으로 향한다

 

이대로 잊히는 것이 더 두려울 미얀마

죽어서도 차마 떠나지 못하고 흑백사진 앞 촛불로 피어났다

미안해 카인

 

그녀는 군부 쿠데타에 항의하는 시위에서 경찰이 쏜 총에 머리를 맞아 숨진 최

초의 순교자가 되었다

 

 


 

 

오선덕 시인 / 죽도

 

 

대나무가 많아 죽도일까. 긴 계단 죽도록 올라가야 해서 죽도일까, 올려다보니 까마득하다. 나선형 긴 달팽이 계단을 오르는 사이 나를 부렸던 배는 도동항으로 되돌아갔다.

 

도동항에서 15분이면 닿는 작은 섬. 섬에는 더덕 주스를 갈아주는 부부가 있다. 땡볕사이에 길을 내고 있는 대나무 숲 터널. 그 끝, 빨려들듯 환한 햇살을 가득 품고 서 있는 타원형 문. 터널을 지나 카페에 들어선다. 부부에게서 받은 더덕 주스 한 잔에 섬과 가족의 내력을 얻는다.

 

밭을 일구는 새까만 늙은 농군, 까마득한 절벽아래 몸속을 온통 내보이는 바다, 안개에 몸을 감싼 관음도는 보일 듯 말듯 속을 태운다. 바다는 훤히 속을 내 보이며 저리 아무렇지 않듯 눈의 길을 열고 있다.

 

되돌아오는 길, 옥수수알이 날릴 때마다 찰나의 속력으로 낚아채는 붉은 눈의 괭이갈매기. 바닷속, 떨어진 옥수수 알을 찾아 자맥질하는 또 다른 괭이갈매기.

 

 


 

오선덕 시인

2015년《시와 사람》을 통해 등단. 현재 한국작가회의 회원. 광주전남작가회의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