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최호빈 시인 / 인테리어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11. 2.

최호빈 시인 / 인테리어

 

 

칸막이가 있는

반쯤 감긴 눈의 어머니가 아이를 잠재우듯 검은 구름이 몰려든다

 

밤이 아닌 어떤 곳에서 온 작은 키의 장님들이 너와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보낸,

어느 나라 말인지 알 수 없는 진짜 이름을 전한다

치켜뜬 의안(義眼)이 비추는

멈출 줄 모르고 변해가는 너의 안색

 

흔들리는 시계바늘에 앉아 전속력으로 떨어지는 창밖의 이파리에 시선을 고정시킨

새가 초조함을 돌고 있다

 

꿈에서 사용하는 힘없는 너의 두 눈은

숨 쉬는 버릇이 있는 네게서

다른 방식으로 숨 쉬고 있던, 네가 죽인 것들을 갈라놓는다

 

빈 침대를 품고 달아나는

버려진 집

 

벽난로에서 누군가 절반쯤 태우다가 만 고양이가 눈동자에 새를 가두고 다시 타오른다

비로소 네게 기대고 있던 새벽이 밤새 지붕에 앉아 있던 까마귀를 만난다

 

월간《유심》 2013년 1월호 발표

 

 


 

 

최호빈 시인 / 전교(轉校)

 

 

1

맑은 하늘 아래

죽은 자의 옷을 훔친 나무들은

어린잎에게 검붉은 색을 갈아 입히고

깊은 잠에 든 아이들이 빛에 씻기지 않도록

무거운 잎들은 바닥까지 가지를 구부린다

 

복화復花로 빚은 술로 묵묵히

목을 축이는 연약한 습속

 

해가 갈수록

머리를 풀어헤친 당산堂山의 여름이

죽은 이들을 닮고 있었다

 

2

비라는 중심이 축 늘어진다

 

서로를 만난 적 없다는 듯

한 손은 주먹을 쥐고

한 손은 편 채로

잔바람에 볼을 떨다가도

속삭이듯 서로를 물어뜯고,

결국 하나로 엉켜

우산 밖을 향해 구른다

 

어둠에 갇힌 물의 집

 

장화와 속옷을 벗고

비로 내리기를 기다린다

 

3

말을 더듬는 동생에게

 

얇은 막을 왼뺨과 오른뺨 사이에 펼쳐두고

우리는 말동무가 될 수 없다

너는 나의 말을 듣고 있는 듯하지만

막 가까이 귀를 대고서도

너는 아무것도 듣지 못한다

 

짤막한 내 이름이 새겨진

어머니 배의 튼 살을 베껴라

 

살아있는 살은 그것뿐이다

 

『다층』2012, 봄호

 

 


 

최호빈 시인

1979년 서울에서 출생. 한국외국어대 불어과 졸업. 고려대 대학원 국문과 박사과정 수료. 201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