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호빈 시인 / 인테리어
칸막이가 있는 반쯤 감긴 눈의 어머니가 아이를 잠재우듯 검은 구름이 몰려든다
밤이 아닌 어떤 곳에서 온 작은 키의 장님들이 너와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보낸, 어느 나라 말인지 알 수 없는 진짜 이름을 전한다 치켜뜬 의안(義眼)이 비추는 멈출 줄 모르고 변해가는 너의 안색
흔들리는 시계바늘에 앉아 전속력으로 떨어지는 창밖의 이파리에 시선을 고정시킨 새가 초조함을 돌고 있다
꿈에서 사용하는 힘없는 너의 두 눈은 숨 쉬는 버릇이 있는 네게서 다른 방식으로 숨 쉬고 있던, 네가 죽인 것들을 갈라놓는다
빈 침대를 품고 달아나는 버려진 집
벽난로에서 누군가 절반쯤 태우다가 만 고양이가 눈동자에 새를 가두고 다시 타오른다 비로소 네게 기대고 있던 새벽이 밤새 지붕에 앉아 있던 까마귀를 만난다
월간《유심》 2013년 1월호 발표
최호빈 시인 / 전교(轉校)
1 맑은 하늘 아래 죽은 자의 옷을 훔친 나무들은 어린잎에게 검붉은 색을 갈아 입히고 깊은 잠에 든 아이들이 빛에 씻기지 않도록 무거운 잎들은 바닥까지 가지를 구부린다
복화復花로 빚은 술로 묵묵히 목을 축이는 연약한 습속
해가 갈수록 머리를 풀어헤친 당산堂山의 여름이 죽은 이들을 닮고 있었다
2 비라는 중심이 축 늘어진다
서로를 만난 적 없다는 듯 한 손은 주먹을 쥐고 한 손은 편 채로 잔바람에 볼을 떨다가도 속삭이듯 서로를 물어뜯고, 결국 하나로 엉켜 우산 밖을 향해 구른다
어둠에 갇힌 물의 집
장화와 속옷을 벗고 비로 내리기를 기다린다
3 말을 더듬는 동생에게
얇은 막을 왼뺨과 오른뺨 사이에 펼쳐두고 우리는 말동무가 될 수 없다 너는 나의 말을 듣고 있는 듯하지만 막 가까이 귀를 대고서도 너는 아무것도 듣지 못한다
짤막한 내 이름이 새겨진 어머니 배의 튼 살을 베껴라
살아있는 살은 그것뿐이다
『다층』2012,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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