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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류인서 시인 / 인공폭포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11. 4.

류인서 시인 / 인공폭포

 

 

정적의 사구 쪽으로 몸 굴리는

노련한 스턴트맨의 계산된 낙법이다

 

절벽에 닿고서야 불현듯

공복 상태인 기억 뿌리째 뒤흔들어보는

제 안에 날뛰는 말 방망이

침 튀기며 휘둘러대는

오거리의 알몸 거인은

어디에다 저의 길을 만드나

 

공명의 골짜기 앗긴

그 산의 데드 마스크,

식은 혀뿌리 뽑아 헹구며

제 울음 공중에 던져 빨래처럼 넌다

 

 


 

 

류인서 시인 / 꽃 진 자리

 

 

꽃잎 지고 난 가을 뜰에서

한 중심을 향해 둘러앉은 시간의 고분군을 만납니다

불붙어 싸우던 허공마다

깜깜하게 깊어진 그늘이 봉분처럼 돋아올라

빛을 삼키며 침묵의 블랙홀로 가고 있네요

날아오르고 싶은 바람홀씨들

기억 저 끝과 이 끝은 유물로 가라앉아 있을까요

 

벽화 속의 채운(彩雲) 하늘과

하늘을 기울여도 쏟아지지 않는 붉은 해

해의 동공에 사는 세발까마귀 눈뜨고, 웅얼웅얼

오음음계 노랫소리 꽃물처럼 번져나와

바람 깨워 흔들며 내게로 스밉니다

그 노래를 배음으로 이울었다가 다시 부풀기도 하는

먼바다의 더 먼 별자리까지 궁상각치우, 익고 익어 따스합니다

 

 


 

류인서 시인

1960년 영천 출생. 대구 성장. 2001년 계간 《시와 시학》에 〈꽃 진 자리〉 등  여섯 편의 시를 발표하며 등단. 시집에는 『그는 늘 왼쪽에 앉는다』(창작과비평, 2005)와 『여우』(문학동네, 2009), 『신호대기』(문학과지성사, 2013)가 있음. 2009년 제6회 육사시문학상 젊은시인상, 2010년 제11회 청마문학상 신인상, 2013년 대구시인협회상 수상. 2015년 제10회 지리산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