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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고현혜 시인 / 나쁜 엄마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11. 5.

고현혜 시인 / 나쁜 엄마

 

 

이런 엄마는 나쁜 엄마입니다

 

뭐든지 맛있다고 하면서 찬밥이나 쉰밥만 드시는

옷이 많다고 하면서 남편의 낡은 옷까지 꿰매 입는

아픈 데가 하나도 없다고 하면서 밤새 끙끙 앓는 엄마

 

한평생 자신의 감정은 돌보지 않고

왠지 죄의식을 느끼며

낮은 신분으로 살아가는 엄마

 

자신은 정말 행복하다고 하면서

딸에게 자신의 고통이 전염될까 봐

돌 같이 거친 손과 가죽처럼 굳은 발을 감추는 엄마

 

이런 엄마는 정말 나쁜 엄마입니다

 

자식을 위해 모두 헌신하고

더 줄 게 없어

자식에게 짐이 될까 봐

어느날 갑자기 눈을 뜬 채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엄마는 정말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따뜻한 밥을 풀 때마다

고운 중년 부인의 옷을 볼 때마다

뒷뜰에 날아오는 새를 "그랜마"라고 부르는 아이의 소리를 들을 때마다

자식 가슴에 못 박히게 하는 엄마는 정말 정말 나쁜 엄마입니다

 

난 여러분께 나의 나쁜 엄마를 고발합니다

 

 


 

 

고현혜 시인 / 아직도 그대 안에 있는 전쟁

 

 

오늘 밤

내 혀가

은하수를 자른다

검은 뼈 발사되고

울부짖는 첼로 표류된다

 

내 입 열면

천 개 해골 침묵하는

망망한 암흑

살아 올 수 없는

타클라마칸

사막 묘지로 보내진다

 

전쟁을 말 한 적이 없는

눈의 불꽃

모든 비밀은

그곳에서 다

타버린다

내 침묵은 너의 입

해골 가득한

기억의 집

내 턱

어둠의 경첩

별빛

더러운 흙

캡슐의 황폐화

 

백인 남자가 말을 한다

 

아무도 너의 소리를 듣지 못해

아무도 널 찾을 수가 없어

입을 열어

 

내가 말한다

 

내 혀 자르고 불을 질러봐

이 비밀 태울 수 있는지

내겐 다른 혀가 있어

내 눈에 내 뼈에 담은

이전쟁의 모든것을

말할거야

 

ㅡ『한국동서문학』(2019, 봄호)

 

 


 

 

고현혜 시인 / 집으로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세요.

그대 집에

죽어가는 화초에 물을 주고

냉기 가득한 그대 부엌

큰솥을 꺼내 국을 끓이세요.

어디선가 지쳐 돌아올 아이들에게

언제나 꽃이 피어 있는

따뜻한 국이 끓는

그대 집 문을 열어주세요.

문득 지나다 들르는 외로운 사람들에게

당신 사랑으로 끓인 국 한 그릇 떠주세요.

그리고 지금 당신 곁에 있는 사람

목숨 바쳐 사랑하세요.

 

 


 

고현혜 (Tanya Ko) 시인

1964년생 1993년 《한국시》로 등단. 안티오크 대학에서 문예창작 석사. 시집으로 영한시집 『일점 오세』,  영시집 『Yellow Flowers on a Rainy Day』와 시집  『나는 나의 어머니가 되어』가 있음. 영시 「Comfort Woman" Women's National Book Association」가 2015년 영예의 시 선정됨. 제1회 윤동주미주문학상 우수상 수상. 현재 미국 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