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승리 시인 / 자연의 아이들
죽어서 걷는 길을 보았던 걸까 정작 죽어서는 볼 수 없는 길을 길 한쪽으로 정렬한 백목 그림자조차 눈이 부시다 왼쪽 풍경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시작과 끝이 보이지 않는 계단이 내 발자국을 따라오다 문고리가 없는 나를 두드린다 나조차도 들어갈 수 없는 나 나를 통과한 계단은 이미 보이지 않는다 문 바깥쪽에서 깨져 버린 발자국들이 마음껏 흩어지지도 못하고 주춤거리다 담배를 문다 구름 한 모금이 내 몸 한구석에 길게 드리워진다 몇 년 전 돌아가신 증조할머니가 남편이 되어 내 옆에 누워 계신다 나를 꼭 잡고 있으면서 제발 자기를 놔 달라니
* 프리드릭 토르 프리드릭슨의 1991년 영화
장승리 시인 / 폭식
눈물은 숟가락 같고 나는 배가 너무 고파서 못다 한 이야기, 못다 할 소음은 왜 침묵이라고 불리나요 숟가락 위 작은 새 경계가 가장 가려워요 참지 못하고 또 긁어요 상처가 번지고 경계가 이동해요 경계 아닌 곳이 없는 곳에서 나는 죽은 새를 만질 수가 없어요 한 번만 더 말할게요 나는 작은 새를 사랑해요
장승리, 『반과거』, 문학과지성사, 2019년, 12쪽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심상운 시인 / 가족(家族) 외 4편 (0) | 2021.11.27 |
---|---|
박선욱 시인 / 고등어야 미안해 외 1편 (0) | 2021.11.27 |
김준현 시인 / 수목 새벽 외 3편 (0) | 2021.11.26 |
김지헌 시인 / 배롱나무 사원 외 4편 (0) | 2021.11.26 |
윤보영 시인 / 네가 보고 싶은 날은 외 8편 (0) | 2021.11.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