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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강윤순 시인 / 딜버트의 법칙

by 파스칼바이런 2022. 1. 20.

강윤순 시인 / 딜버트의 법칙

 

 

 국화빵 속에 국화는 없다 잠자리에 잠자리도 없다 밤 속엔 밤이 없으므로 내 안에 나는 없다 그래서 내가 맞춘 구두는 내 신발이 아니다 그러므로 어젯밤에 내가 꾼 악몽은 네가 꿈꾸는 꿈이고 네가 키우는 자라는 자라지 않아서 자라가 아니다 그리하여 네가 맞은 만점이 내가 본 시험이고 뻐꾸기 알은 개개비가 키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천 년 전의 강물이 오늘의 강물이고 백일 후의 강물로 흘러갈 것이다 자루 안에 연필이 들어있었지만 새털구름 안에 새가 없었으므로 해이리에는 해가 뜨지 않았다 모스크바 광장에 레드카펫이 깔리지 않았다 그래서 바람이 불고 너의 바람은 없고 내 머리카락은 휘날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쇼윈도 부부는 앵무새같이 같은 말을 되풀이 하는 것일 뿐이고 밤이 선글라스를 끼고 있을 뿐이다 그리하여 유리천장은 블루칼라가 아닐 수밖에 없고 진열장에 들어간 코끼리는 어디까지나 인형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지구본은 더 빨리 돌아야 하고 내 꿈은 해바라기도 모르게 피어야 한다 위를 모르는 장은 분별력이 없으므로 흰색 와이셔츠를 입은 너는 언제까지 너를 몰라야 한다

 

독버트가 달을 보고 짖는다 상승하는 엘리베이터 밖 어디에도 망원경은 없다

 

계간 『예술가』 2014년 가을호 발표

 


 

강윤순 시인

2002년 《시현실》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108가지의 뷔페식 사랑』(한국문연, 2007)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