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일 시인 / 아라크네
호젓한 밤의 눈을 감아올려 진실의 가장자리부터 神을 짜는 동안 배꼽을 가진 것들의 털은 거룩했다.
인간이 신을 거역한 죄로 사라진 머리카락 사라진 코 사라진 귀 뭉개진 얼굴 옆구리에서 돋아나야만 하는 손가락 발가락
배꼽에 실을 매달아 자신을 배웅하고 용서하고 대대로 갇히는
운명은 이토록 명료하다.
신들을 수놓은 테피스트리를 찢고 한번쯤 줄을 끊고 구름밭을 걸어보고 싶다.
천국에서는 어떤 나팔소리가 들리려나, 진정
나를 혐오하는 일이 단 한 번이라도 유일한 낙이었으면……
신을 여덟 발로 경배할 때 얇은 은사를 튕기며 나비 날아들었다.
나비가 울면 저쪽에서 나는 흔들린다.
어떤 꽃의 운명을 간섭하고 왔니?
날개를 떼어내면 꽃가루겠지. 꽃가루를 발음하면 흰 꽃잎이 날리겠지.
희디흰 보드라움 서서히 옭아 피륙을 짜면 나만의 울음을 가질 수 있을 거야.
지극한 직물의 잠을 잘 수 있는 내가 꿈꾸는 무덤이 될 거야.
계간 『시산맥』 2016년 여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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