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명자 시인 / 발원지
아무리 봐도 거짓말 같은 큰 강의 발원지라는 곳, 발원지의 발원지는 또 어딜까, 궁금하게 하는 발원지라는 곳, 땅에서 솟았나, 저 물꼬는 가늘지만 그칠 줄 모른다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흐른다니 눈물샘이 막혔단다 눈물샘이 막히면 눈물은 어디로 가나, 눈물의 발원지는 또 어딘지 궁금해진다 수도꼭지를 틀어놓은 듯 펑펑 넘쳐나는 눈물을 더는 받아들일 수 없다니 오래된 몸이 발작한다 막힌 눈물샘 어쩌지 못해 바깥으로 자꾸만 내보내는 눈물의 발원지는 도대체 어딜까, 가슴 저 밑 어디에서 울컥울컥 펌프질해대는 거기지 싶은데 그래서 눈물을 안으로 삼키기도 한다는데 눈물샘은 자신이 마른 줄도 모르고 가슴 저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눈물에게 길 열어 주지 않는다 더는 울지 말라는 경고인 듯
ㅡ『시인시대』(2021, 봄호)
황명자 시인 / 분꽃
오후 네 시의 그녀*는 처녀 적 엄마 같기도 하고 엄마 적 외할머니 같기도 하지
수줍은 듯 낯선 듯 저물 무렵에 먼 얼굴 내미는 풀무치처럼 보일 듯 말 듯 지나치게 소심한 몸짓으로 다가오곤 하지
하지만 분꽃의 역할은 참 가지가지 고운 듯 수수하고 귀한 듯 소박하지
풀더미 속 은근한 눈빛에 반해 슬그머니 손 내밀어보니 어느 자리에서나 수더분한 얼굴 하나 거기 있었네
볼 적마다 가슴 한 쪽 먹먹하게 하는 母性의 삶!
*분꽃은 오후 네 시쯤 핀다고 하여, 영어로 'four-o'clock'혹은'afternoon lady'라고 부름
-시집<아버지 내 몸에 들락거리시네>/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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