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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고경숙 시인 / 어물전에서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1. 22.

고경숙 시인 / 어물전에서

 

 

질퍽이는 바닥을 피해 어물전에 들어섰다

작은 수족관 속에서 대게 몇 마리 서로 발이 엉켜 뒤틀고 있다

양푼 속에선 바지락조개들 간간이 물을 뿜으며 철없이 놀고

주인 아지메가 남은 생태 몇 마리를 떨이로 넘기려는지

무지막지한 꼬챙이로 아가미를 찍어 벌린다

이보요,빨갛지. 눈깔은 또 어떻고...

말간 생태 두 눈에 피가 맺혀있다

어린 놈이다

 

떡판처럼 우직한 통나무 위에 찍어둔 시퍼런 칼날

단연 이 어물전에 실세지만

난자 당한 도마를 씻느라 바가지 가득 물을 끼얹을 때마다

파도소리를 듣는다

미끈한 갈치도 고등어도 약간 물간 오징어도

그 소리를 들었다

더 큰 놈은 없소?

주인은 들은 체도 안하고 한 마리 더 얹어준다는 걸쭉한 호객뿐,

그래도 팔다 남은 놈 있으면 배 갈라 쫙쫙 소금 뿌려

자반으로 넘긴다

 

차양 너머로 금빛 노을이 파장을 부를 때쯤

사람들은 우루루 기다렸다 모여들고

동물이나 사람이나 마주보고 탐색전을 벌이다

저 같은 놈 만나 끼리끼리 어울리듯이

너희에겐 그게 딱이야!

작은 이 시장에 불문율 하나 슬픔처럼 내 걸린다

 

돌아오는 길

생선가게 뿌연 TV속에서

수많은 갈치 고등어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비린내나는 대선후보들의 논쟁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었다

주인여자가 껌을 질겅이며 돈을 세고 있었다

 

 


 

 

고경숙 시인 / 석류

 

 

발정기에 들어선 원숭이떼가

엉덩이를 까고 놀리는 줄 알았다.

빨간 석류,

아니 차도르 쓴 여자의 은밀한 곳처럼

검붉다는게 정확하겠지

'이란産' 딱지 하나씩 엉덩이에 붙이고

위장한 여전사들

어쩌면 저속엔 투명한 탄환알갱이들이

가득 숨겨져 있을지 몰라

허름한 시장통

경계 느슨한 그 곳에서

미제에 물든 내 뱃속을 향해

기습테러를 계획하고 있는 낯선 무리들.

 

 


 

고경숙 시인

1961년 서울 출생. 2001년 계간 《시현실》로 등단. 시집으로 『모텔 캘리포니아』(2004), 『달의 뒤편』(2008), 『혈穴을 짚다』(2013), 『유령이 사랑한 저녁』(2016)이 있음. 수주문학상, 두레문학상,경기예술인상, 희망대상(문화예술부문), 한국예총 예술문화공로상 수상. 부천예총 부회장,수주문학상운영위원장, 부천시 문화예술위원, 부천의 책 도서선정위원장, 부천신인문학상운영위원, 부천시립도서관 운영위원, 부천펄벅기념관 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