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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황명자 시인 / 발원지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1. 22.

황명자 시인 / 발원지

 

 

아무리 봐도 거짓말 같은

큰 강의 발원지라는 곳,

발원지의 발원지는 또 어딜까, 궁금하게 하는

발원지라는 곳, 땅에서 솟았나, 저 물꼬는

가늘지만 그칠 줄 모른다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흐른다니

눈물샘이 막혔단다 눈물샘이 막히면

눈물은 어디로 가나,

눈물의 발원지는 또 어딘지 궁금해진다

수도꼭지를 틀어놓은 듯

펑펑 넘쳐나는 눈물을

더는 받아들일 수 없다니

오래된 몸이 발작한다

막힌 눈물샘 어쩌지 못해

바깥으로 자꾸만 내보내는 눈물의

발원지는 도대체 어딜까,

가슴 저 밑 어디에서 울컥울컥

펌프질해대는 거기지 싶은데

그래서 눈물을 안으로 삼키기도 한다는데

눈물샘은 자신이 마른 줄도 모르고

가슴 저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눈물에게

길 열어 주지 않는다

더는 울지 말라는 경고인 듯

 

ㅡ『시인시대』(2021, 봄호)

 

 


 

 

황명자 시인 / 분꽃

 

 

오후 네 시의 그녀*는

처녀 적 엄마 같기도 하고

엄마 적 외할머니 같기도 하지

 

수줍은 듯 낯선 듯

저물 무렵에 먼 얼굴 내미는

풀무치처럼 보일 듯 말 듯

지나치게 소심한 몸짓으로 다가오곤 하지

 

하지만

분꽃의 역할은 참 가지가지

고운 듯 수수하고

귀한 듯 소박하지

 

풀더미 속 은근한 눈빛에 반해

슬그머니 손 내밀어보니

어느 자리에서나 수더분한 얼굴 하나

거기 있었네

 

볼 적마다 가슴 한 쪽

먹먹하게 하는 母性의 삶!

 

*분꽃은 오후 네 시쯤 핀다고 하여, 영어로 'four-o'clock'혹은'afternoon lady'라고 부름

 

-시집<아버지 내 몸에 들락거리시네>/2018

 

 


 

황명자 시인

경북 영양에서 출생. 1989년 월간 《문학정신》으로등단. 시집으로 『귀단지』, 『절대고수』, 『자줏빛 얼굴 한 쪽』이 있음. 2014년 대구시인협회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