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광규 시인 / 맛없는 고기
청양 산골 함석지붕 아래에서 먹는 야생 멧돼지와 산꿩은 우리를 벗어나 산야를 마음대로 헤매던 근육 맛이다
울진 후포 어시장 노점 바다에서 금방 건져올린 물가자미회는 물살을 힘차게 뚫고 다니던 지느러미 맛이다
우리에 갇힌 돼지나 양어장 물고기는 맛이 없다 비육된 이념이나 사육된 인간도 마찬가지다
세상천지에 이 맛없는 고기들
시집 - 소주병 (2004년 실천문학사)
공광규 시인 / 느티나무 아래로 가서
이렇게 희망 없는 중년을 더럽게 버텨가다가 다행히 도심이나 여행길에서 늙은 개처럼 버려지거나 비명횡사하지 않는다면 다행이리라 기력이 다한 어느 날 나는 도시의 흙탕물에 젖은 털과 너덜너덜한 상처를 끌고 백 년도 넘게 천천히 살아온 우리 동네 느티나무 아래로 갈 것이다 월산 쪽으로 지는 해를 바라볼 때 누가 회환으로 가득 찬 구겨 앉은 늙은 짐승을 알아줄 리 없지만 남들을 따라 짖어온 그림자 같은 안타까운 삶을 망연히 바라보며 망상을 기댈 것이다.
시집 - 소주병(실천문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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