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민 시인 / 아연하다
구름 공원을 건너는 발자국이 구불텅,가파른 내 안 저쪽 나란 심급은 피 묻은 치맛자락보다 못해 하늘을 보지 못하지
나는 자연 질서법 7조 위반혐의라니 사차원 세계에서나 벌어질 일이라고 고발당했지 벌건 백주 대낮에 숲 속에서 가슴을 열어놓은 채 오, 나의 이브를 낭송했다는 붉은 죄 기원전에 살았다는 아담 시는 내게 어떤 존재냐고 물어오더군
나는 햇살론 가득한 시절 먹혀버린 그녀의 물먹은 몸뚱어리를 만져 주지 못했지
별똥별 쌓인 골짜기마다 안개로 떠다니느라 병색 짙은 낮달로 곤두박질쳤거든
머리카락 풀어 헤치고 산자락을 넘어 간 후 집으로 돌아 올 줄 모르는 내 영혼도 몸이 깨져버린 순간에야 알았어
무화과가 수십 번 나뭇가지에 열릴 때까지 기다리던 삶은 숲으로 향했다고 안이 울면 밖의 울음통도 자동 열리는 법이라고 내 뒤통수에서 피가 흘렀어 상처로 피어났지
숯검댕이 육신이 깨져 버린 눈물방울이 진물과 녹물이 같은 값이 란걸
에덴에도 토마토가 붉은 치마끈을*곧 푼다더군 꼬리 썩은 뱀이 몸뚱어리로 울면 얼마나 운다고 죄 그 죄목이 뭔데
쇠사슬을 끌고 달팽이가 낸 길을 따라 밖으로 기어 나왔지
*토마토가 치마끈을 풀었다 이혜민의 첫 시집 제목
웹진 『시인광장』 2021년 10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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