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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왕모 시인 / 전망 좋은 방
11층 그 방에선 모든 게 내러다뵈지 안 뵈는 게 없지
십자가 붉은빛보다 이발소 삼색등이 더 밝고 가깝지 어기적거리며 걸어 나오는 부른 배가 풍만도 하지 술 취한 애늙은이 노랫소리가 바람을 타지
30층 건물 중간도 못 되는 11층 그 방에선 대게 다 내려다뵈지 30층 거기면 뵈는 게 없을 거라지
『비탈의 사과』, 연왕모 ,문학과 지성사 , 2010년, 18쪽
연왕모 시인 / 붕어빵
붕어의 육체를 빌렸음 똑같은 틀 속에서 똑같은 형태로 계속 태어남 밀가루 계란의 향으로 비린내를 감추려 했음 붉은 팥 그리고 달궈진 쇳덩이 틀로부터 불의 혼을 받아 태어남 탄생은 죽음으로 예정됨 그러나 예정된 죽음이 존재하는 한 계속 부활할 것임 껍데기일 뿐인 육체를 빌려
연왕모 시인 / 벌레
어디론가 갈 가야 할 갈갈 가얄 갈갈 가얄
오줌이 마려워 화장실에 갔더랬습니다 변기 앞에 서 있으려니 오른쪽 벽면에 바퀴벌레가 한 마리 있는 것이었습니다 분명히 우리집 화장실이었지요 나는 가차없이 플라스틱 식염수통을 들어 그 놈을 갈겨버렸습니다 갑자기 반신불수가 되어 뒤집혀진 그 녀석이 다리 너덧 개 버둥거리더군요 그 놈 옆에 식염수통을 놓고 나는 오줌을 눴습니다 오줌을 다 누고 화장실에서 나왔지요
몇 시간이 지난 뒤 다시 화장실에 갔더랬습니다 문을 열면서 그놈이 아직 그 자리에 있을까 궁금해지는 것이었지요 파리채에 완전히 짜부라졌다가도 살아나는 파리처럼 그 자리에서 없어졌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래서 문을 열고 그놈을 찾아보니 역시나 그 자리에 없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몸으로 멀리 갈 수는 없었겠지요 두 발자국쯤 떨어진 곳에 그놈이 아주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간신히 몸을 추스르게 된 그놈을 향해 다시 식염수통을 쥐어들었지요 힘을 주어 세게 위에서 찍어누르니 찍 소리가 나더군요 그 놈의 혼이 달아나고야 말았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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