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연왕모 시인 / 전망 좋은 방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2. 8.

연왕모 시인 / 전망 좋은 방

 

 

11층 그 방에선

모든 게 내러다뵈지

안 뵈는 게 없지

 

십자가 붉은빛보다

이발소 삼색등이

더 밝고 가깝지

어기적거리며 걸어 나오는 부른 배가

풍만도 하지

술 취한 애늙은이 노랫소리가

바람을 타지

 

30층 건물

중간도 못 되는

11층 그 방에선

대게 다 내려다뵈지

30층 거기면

뵈는 게 없을 거라지

 

『비탈의 사과』, 연왕모 ,문학과 지성사 , 2010년,  18쪽

 

 


 

 

연왕모 시인 / 붕어빵

 

 

붕어의 육체를 빌렸음

똑같은 틀 속에서 똑같은 형태로 계속 태어남

밀가루 계란의 향으로 비린내를 감추려 했음

붉은 팥 그리고

달궈진 쇳덩이 틀로부터 불의 혼을 받아 태어남

탄생은 죽음으로 예정됨

그러나

예정된 죽음이 존재하는 한

계속 부활할 것임

껍데기일 뿐인 육체를 빌려

 

 


 

 

연왕모 시인 / 벌레

 

 

어디론가

가야 할

갈갈 가얄 갈갈 가얄

 

오줌이 마려워 화장실에 갔더랬습니다 변기 앞에 서 있으려니 오른쪽 벽면에 바퀴벌레가 한 마리 있는 것이었습니다 분명히 우리집 화장실이었지요 나는 가차없이 플라스틱 식염수통을 들어 그 놈을 갈겨버렸습니다 갑자기 반신불수가 되어 뒤집혀진 그 녀석이 다리 너덧 개 버둥거리더군요 그 놈 옆에 식염수통을 놓고 나는 오줌을 눴습니다 오줌을 다 누고 화장실에서 나왔지요

 

몇 시간이 지난 뒤 다시 화장실에 갔더랬습니다 문을 열면서 그놈이 아직 그 자리에 있을까 궁금해지는 것이었지요 파리채에 완전히 짜부라졌다가도 살아나는 파리처럼 그 자리에서 없어졌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래서 문을 열고 그놈을 찾아보니 역시나 그 자리에 없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몸으로 멀리 갈 수는 없었겠지요 두 발자국쯤 떨어진 곳에 그놈이 아주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간신히 몸을 추스르게 된 그놈을 향해 다시 식염수통을 쥐어들었지요 힘을 주어 세게 위에서 찍어누르니 찍 소리가 나더군요 그 놈의 혼이 달아나고야 말았던 것입니다

 


 

연왕모 시인

1969년 서울에서 출생.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1994년 《문학과 사회》 여름호에 시를 통해 등단. 시집으로 『개들의 예감』(문학과지성사, 1997)과 『비탈의 사과』(문학과지성사, 2010)가 있음. 현재 '21세기 전망' 동인으로 활동 中. 1998. 현대시동인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