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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무현 시인 / 해바라기
아버지 뽕밭에 묻어야 했던 날 나와 어린 동생은 장맛비 속에 하염없이 고개를 꺾었지요
바람 앞에 촛불처럼 겨우 붙어 있던 목 추스르신 어머니 아픈 목을 쓸어안으며 팍팍한 세상 잘 떠났지 뭐 죽은 사람은 죽은 것이고 산사람은 살아야지 팽! 코를 푸실 때 쪼개진 구름 사이에서 색종이 같은 햇살이 쏟아져 내렸지요 어머니는 기다렸다는 듯이 얘들아 해바라기 같은 내 새끼들아 고개 빳빳이 세우고 저기 저기 해 좀 보아 아무리 보아도 어머니 어머니 눈엔 아버지 얼굴만 떠있었는데요
- 시집, <洪魚(홍어)>(도서 출판 글나무, 2005)
원무현 시인 / 홍어
시집간 동생에게서 편지가 왔다
오라버니 이제는 가세가 조금은 일어서서 가끔 산에도 올라간답니다 작년 겨울에는 눈 구경 갔다가 팔이 부러졌어요 걱정 마세요 오라버니 놀다가 부러질 팔도 있다 생각하니 그저 꿈만 같아서 실실 웃음이 다 나옵디다 그건 그렇고 오라버니 팔이 뼛속까지 가려운 걸 보니 이제 깁스를 풀 때가 다 되어 가는 모양이네요 그때면 홍어가 제법 삭혀져서 먹을 만 할거네요 ......
이제 밥걱정은 없으니 한번 다녀가라는 반가운 소식이지만 코가 맵다 눈이 맵다 입 줄인다고 열 네 살 나던 그 해 남의 집에 던져졌던 동생의 편지는
- 시집<홍어>(도서 출판 글나무,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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