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원무현 시인 / 해바라기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2. 8.

원무현 시인 / 해바라기

 

 

아버지

뽕밭에 묻어야 했던 날

나와 어린 동생은 장맛비 속에

하염없이 고개를 꺾었지요

 

바람 앞에 촛불처럼 겨우 붙어 있던 목

추스르신 어머니

아픈 목을 쓸어안으며

팍팍한 세상 잘 떠났지 뭐

죽은 사람은 죽은 것이고

산사람은 살아야지

팽! 코를 푸실 때

쪼개진 구름 사이에서

색종이 같은 햇살이 쏟아져 내렸지요

어머니는 기다렸다는 듯이

얘들아 해바라기 같은 내 새끼들아

고개 빳빳이 세우고 저기

저기 해 좀 보아

아무리 보아도 어머니

어머니 눈엔 아버지 얼굴만 떠있었는데요

 

- 시집, <洪魚(홍어)>(도서 출판 글나무, 2005)

 

 


 

 

원무현 시인 / 홍어

 

 

시집간 동생에게서 편지가 왔다

 

오라버니 이제는 가세가 조금은 일어서서

가끔 산에도 올라간답니다

작년 겨울에는 눈 구경 갔다가 팔이 부러졌어요

걱정 마세요 오라버니

놀다가 부러질 팔도 있다 생각하니

그저 꿈만 같아서

실실 웃음이 다 나옵디다

그건 그렇고 오라버니

팔이 뼛속까지 가려운 걸 보니

이제 깁스를 풀 때가 다 되어 가는 모양이네요

그때면 홍어가 제법 삭혀져서 먹을 만 할거네요

......

 

이제 밥걱정은 없으니 한번 다녀가라는 반가운 소식이지만

코가 맵다

눈이 맵다

입 줄인다고

열 네 살 나던 그 해 남의 집에 던져졌던 동생의 편지는

 

- 시집<홍어>(도서 출판 글나무, 2005)

 


 

원무현 시인

1963년 경북 성주 출생. 2003년 격월간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 시집으로 <너에게로 가는 여행>(1994), <洪魚(홍어)> (도서 출판 글나무, 2005), <사소한, 아주 사소한>(지혜사랑, 2012), <강철나비>(빛남, 2016) 등이 있음. 요산문학관 사무국장을 역임, 현재 빛남 출판사 대표, (사)아름다운 사람들 사무처장 및 이사, 부산시인협회 이사, 부산작가회의 회원. 부산 크리스천 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