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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위승희 시인 / 이별, 그 사소함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2. 8.

위승희 시인 / 이별, 그 사소함

 

 

우리의 사랑보다 우리의 이별은 너무나 사소했네

늘 만나던 까페의 익숙함이

신선하지 않을 인사를 나누며

그대는 창가에서 두 번째 테이블의 덮개가 삼 센티쯤

밀려나간 것을 바라보고

나는 절망으로 자라난 손톱을 자르지 못했다고

말해야 하는지를 생각하지

그대 눈빛에서 꽃 피고 꽃 지는 소리 사라짐은

꽃가게의 꽃들이 너무 많아서였다고

잇몸을 다 드러내고 웃는 그대 입안으로

바람 움트는 지루함

그대 돌아서는 뒷모습에서 쟈켓 한 귀퉁이 조금씩 구겨 올라간 것을

또는

그대가 떠난 자리에 의자 쿠션이 조금 옴폭 가라앉은 것을

일일이 기억해야 하는 권태의 바지,

드라이크리닝된 그대의 허무가 세탁소 그늘에 내걸릴 쯤

그대 기억할까

마지막 커피잔을 만지작거리던 사람을

마지막 커피값을 지불한 사람을

그렇게 이별은 사소했네

이제 정갈한 뒷모습의 한 사람이 그리워지네

 

 


 

 

위승희 시인 / 생각을 굽는다

 

 

청어는 간이 밴 만큼 단단해져 있다 졸음이 눈꺼풀을

당기는 아침 여섯시의 프라이팬 위, 폐부까지 절여져

하룻밤 언 잠을 잔 청어가 치이익 치이익 몸을 녹여간다

 

무거운 눈꺼풀 위로 식용유 한 방울 튕기면서 알맞게

굽는다는 것은 달구어진 밑바닥을 살펴보야야 하는 일

혹은 적당한 때 뒤집어 보아야 하는 일이라며 청어가

어깨를 들썩인다 청어의 생각을 훌렁 뒤집어 본다

 

간밤 내가 짓던 따스한 집 한 채는 어둠이 허물어 질때

허물어졌다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못 하나에도 生은 찔

리고 기둥을 나르는 곡주로에서 넘어져 달구어져 있던

밤위에서 나는 숯덩이로 타버렸다

 

내 폐부는 비린내를 풍기며 청어가 익어가듯, 나 아직 더

많은 땀 비린내로 뜨거운 거리에 서야 한다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는 청어를 내 생각의 접시 위에

담고 또 시작하는 아침, 잘 구어진 생각으로 여는

프라이팬 위의 삶, 탄력있게 집히는 살점 한 점

 

 


 

 

위승희 시인 / 물 속의 길

-痛點21

 

 

얼마나 흘러왔을까

그대를 아직 건너지 못하고 있다

내 시선이 통과하지 못한 그대의 깊이,

 

물 속의 길은 언제나 헤매는 자의 등 뒤 모습을 보여준다

뜨거운 알돌 돌아누우면 물살의 길이 나고

아픈 삶의 지느러미 퍼덕이며

연어가 거슬러 올라오면 물 속에 길이 났다

 

눈물 속으로 그대가 거슬러 온다

내가 걸어온 길이 흐른다

춘곤에 겨워 별스럽게 깊은 발자욱들이

지쳐 무심히 꺾어 버렸던 망초꽃,

또 다시 새 잎을 틔우고 있다

 


 

위승희 시인

1963년 강원도 영월 출생. 명지대 국문과를 졸업. 1998년 월간 <현대시>로 등단. 노래하는 시인으로 음유시인으로 불리우고 있다. 현재 <현대시 엔터테인먼트>의 기획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