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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장석주 시인 / 독도 고래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2. 9.

장석주 시인 / 독도 고래

 

 

꿈이구나 꿈이구나

 

사는 것도 꿈이요 죽는 것도 꿈이구나

이제 오나 저제 오나 외뿔 고래

꿈을 밟고 오시려나 외뿔 고래

 

꿈이구나 꿈이구나

사는 것도 꿈이요 죽는 것도 꿈이구나

바다에 연꽃 피면 외뿔 고래 오신다네

바다에 연꽃 피면 외뿔 고래 오신다네

 

 


 

 

장석주 시인 / 붕붕거리는 추억의 한때

 

 

세상에서 내가 본 것은 아픈 사람과 아프지 않은 사람들,

살아 있는 것들의 끝없는 괴로움과

죽은 것들의 단단한 침묵들,

새벽 하늘에 떠가는 회색의 찢긴 구름 몇 장,

공복과 쓰린 위,

어느 날 찾아오는 죽음뿐이다.

 

말하라 붕붕거리는 추억이여.

왜 어떤 여자는 웃고,

어떤 여자는 울고 있는가.

왜 햇빛은 그렇게도 쏟아져내리고

흰 길 위에 검은 개는 어슬렁거리고 있는가.

구두 뒷굽은 왜 빨리 닳는가.

아무 말도 않고 끊는 전화는 왜 자주 걸려오는가.

왜 늙은 사람들은 배드민턴을 치고

공원의 비둘기떼들은 한꺼번에 공중으로 날아오르는가.

 

 


 

 

장석주 시인 / 폐허주의자의 꿈

 

 

1.

술취한 저녁마다

몰래 春畵를 보듯 세상을 본다.

내 감각속에 킬킬거리며 뜬소문처럼

눈뜨는 이 세상,

명륜동 버스 정류장에서 집까지

도보로 십분 쯤 되는 거리의

모든 밝음과 어두움.

우체국과 문방구와 약국과

높은 육교와 古家의 지붕 위로

참외처럼 잘 익은 노란 달이 뜨고

보이다가 때로 안 보이는 이 세상.

뜨거운 머리로 부딪치는

없는 壁, 혹은 있는 고통의 形象.

깨진 머리에서 물이 흐르고

나는 괴롭고, 그것은 진실이다.

 

2.

날이 어둡다.

구름에 갇힌 해, 겨울비가 뿌리고

웅크려 잠든 누이여.

불빛에 비켜서 있는 어둠의 일부,

희망의 감옥 속을 빠져나오는 연기의 일부,

그 사이에 풍경으로 피어 있던

너는 어둡게 어둡게 미쳐가고

참혹해라, 어두운 날 네가 품었던 희망.

문득 녹슨 면도날로 동맥을 긋고

붉은 꽃피는 손목 들어 보였을 때, 나는

네가 키우는 괴로움은 보지 못하고

 

그걸 가린 환한 웃음만 보았지.

너는 아름다운 미혼이고

네 입가에서 조용히 지워지는 미소.

열리지 않는 자물쇠에서 발견하는

생의 침묵의 한 부분, 갑자기 침묵하는 이 세상

비가 뿌리고, 비 젖어 붉은 녹물

땀처럼 흘리고 서 있는 이 세상

가다가 돌아서서 바라봐도 아름답다.

 

3.

무너진 것은

무너지지 않은 것의 꿈인가?

어둠은 산비탈의 아파트 불빛들을

완벽하게 껴안음으로 어둠다와진다.

살아 떠도는 내 몸 어느 구석인가

몇 번의 투약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살아서 꿈틀거리는

희망이라는 이름의 몇 마리 기생충,

그것이 나를 더욱 나답게 하는 것인가?

효용가치를 상실하고 구석에 팽개쳐져

녹슬고 있는 기계, 이 세상에 꿈은 있는가?

녹물 흘러내린 좁은 땅바닥에

신기하게도 돋고 있는 초록의 풀을

폐기처분된 기계의 꿈이라고 할 수 있는가?

 

 


 

장석주 시인

1954년 충남 논산에서 출생. 1975년 《월간문학》 신인상 등단. 197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같은 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문학평론이 입선되어 평론가로도 활동 中. 저서로는 시집으로 『햇빛사냥』, 『그리운 나라』, 『새들은 황혼 속에 집을 짓는다』, 『어떤 길에 관한 기억』, 『붕붕거리는 추억의 한때』, 『크고 헐렁한 바지』 등과 『한 완전주의자의 책읽기』 등의 평론집과 『낯선 별에서의 청춘』 등의 소설이 있음. 제1회 애지문학상(문학비평 부문). 1975 월간문학 신인상. 1976 해양문학상 수상. 2013 제11회 영랑시문학상 본상 수상. 시인세계 편집위원. 현대시 편집위원. 현재 동덕여대 문예창작과에서 소설창작 강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