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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가희 시인 / 차를 마시며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2. 9.

이가희 시인 / 차를 마시며

 

 

현룡사 스님께

두어 주먹 얻어 온 화개잎차

 

한잔 마시려고

마알갛게 우리니

방안 가득 목탁소리가 퉁긴다

풍경 흔들던 산바람 일어서

내 코끝을 휘감았다 놓아준다

천수봉 골짜기 쓸어올리던 종소리

맑은 이슬로 고이고

찻잔 가득 녹아 있던

산새의 재잘거림이

모락모락 기어 나온다

눈 감으면 비로소 들린다

빈 가슴속에 불어오는

산사 뒤 숲의 대바람 소리

 

입안 가득 번지는 햇살의 미소

 

『나를 발효시킨다』,이가희, 문학세계사, 2004년, 11쪽

 

 


 

 

이가희 시인 / 숨쉬는 일에 대한 단상

 

 

항아리 속 검은 보자기 아래

노란 꽃술들,

살짝살짝 보자기를 들어 올리며

고르게 숨을 쉰다

 

콩나물 시루에 물을 끼얹을 때면

하루가 다르게 살 차 오르는

둥글 달을 보는 것 같은데

물관부를 따라 물길어 나르는

노랫소리에 맞춰

4분 음표들, 방안을 뛰어 다닐 것 같은데

 

숨쉬는 일이란

틈새를 비집고 촘촘한 영토를 다스리는 일,

고개를 떨군 채

生을 수직상승 시키는 일이다

 

[시와 정신] 창간호

 


 

이가희 시인

1962년 충북 보은 출생. 충남대학교, 고려대학교 대학원(문학석사)과 한남대학교대학원(문학박사수료)을 졸업. 2001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시로 등단했으며 시집 <나를 발효시킨다>와 저서 <한국토종엄마의 하버드 프로젝트>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