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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대 시인 / 눈빛
별이 그 빛을 오롯이 지상으로 내려 보내기 위해 천 년은, 만 년은 걸렸으리라
어머니는 죽어서도 감지 못했을 그 눈빛을 오롯이 내게 보내려고
봉분 위에 핀 제비꽃을 뿌리째 뽑아서 멀리 버려도 어떻게든 살아서
오월 아흐렛날 성묘를 갈 때마다 피고 지고, 피고 지고 하였으리라
- 진영대 시집 『길고양이도 집이 있다』에서
진영대 시인 / 캐비넷
사무실 한켠에 낡은 캐비넷 하나 있다. 그는 칠이 벗겨져 녹물이 흐르고 상처가 깊다. 그의 몸에 귀를 대고 다이얼을 돌리면 그때마다 그의 몸이 가늘게 떨린다.
나는 언젠가 그를 열었던 적이 있다. 다시 오마, 하고 비밀 번호마저 그의 몸 속에 집어넣고 닫아 버린 채 너무 오래 잊고 살았다. 그 동안 구석구석 녹물이 흘렀다. 끝끝내 비밀 번호를 알 수 없는 나에겐 열어 주지 않았다.
그때마다 나는 벽을 느낀다. 나에게도 그런 비밀번호 하나가 있어서 녹물이 흘러내리는 것 같다. 누군가 나를 열어 줄 때까지 사무실 한 켠, 나는 캐비넷이 되어간다.
진영대 시인 / 빈 집
물 속, 내 그림자 속으로 버들붕어 한 마리 들어왔다. 가슴 안쪽에 돌이 하나 박혔던지 물살을 일으켰다. 가슴을 마구 헤집어 놓았던 것이다. 좁은 내 목에도 돌아 하나 불쑥 솟아 나왔다.
내 그림자, 물이 가득 차 있다.
진영대 시집"술병처럼 서 있다"[문학아카데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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