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성운 시인 / 방자유기 마음
사랑하는 마음은 투명한 구슬입니다 동그랗게 감아내어 실핏줄도 환합니다 더 이상 응축치 않는 사리 한 과 물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은 해맑은 샘물입니다 눈동자 씻어 주며 마를 줄을 모릅니다 사랑이 방전될 때는 늪물인 듯 넘쳐납니다
사랑하는 마음은 가을 하늘입니다 우레로 다져진 방자유기 하늘입니다 상처도 장인을 만나 저렇듯 별이 됩니다
홍성운 시인 / 담쟁이
위험해요 맨손으로 벽을 타 오르는 건
믿음이지요 한 가닥 자일에 목숨을 내맡기는 건
기어이 쏟아붓네요 서늘한 별빛 몇 섬
홍성운 시인 / 이어도, 낮은 불빛은 타오르고
바다를 곁에 두고 살아본 사람들은 수평선이 발행한 주식을 배당받아 이따금 어시장에서 시세를 가늠한다
주가가 낮으면 낮은 대로 견디어 온 흉어의 자맥질에 불안한 물새들아 섬 하나 젖은 꿈자리 미리 찍어 두었다
성산포 해가 뜨면 이어도에 달이 뜨고 한림항에 바람 일면 이어도는 출어하네 누구냐 시장 개입해 상한가를 들먹이는
매각한 이 없어라 반딧불만한 생각 하나 시원의 물결 따라 떠 흐르는 섬이여 까치놀 낮은 불빛이 난바다에 가득하다
홍성운 시인 / 누님의 쑥
백두대간 휘돌아 내려 상주시 외남면에 새둥지 햇살을 품는 소상마을 나앉았다 이 마을 터를 일구며 누님이 살고 있다
집은 오십여 호, 층층이 논다랑이 곶감마을 이름만치 감나무가 지천이고 한차례 소나기 같은 복사꽃이 한창이다
4월 끝자락엔 가마솥에 불 지핀다 쑥이나 머윗잎, 두릅이나 가죽나무 풋풋한 산나물 내음 집집이 새나온다
갓 짜낸 들깨기름, 쑥인절미 한입 물면 산골에 왜 사냐고 누가 물을까만 내 누님 요즘 시에는 쑥 향이 솔솔 난다
홍성운 시인 / 고로쇠나무에게
2월 한기 가신 날 너의 체액에 내가 취했다
예전에 너를 몇 번 만났어도 그냥 단풍나무라 여겼다. 어느 친구가 고로쇠나무라 귀띔한 순간, 두툼한 면장갑을 낀 듯 입맥 사이사이 살점이 보였다. 아쓱한 계곡 바람에도 홍조를 띠던 네가 용케도 전라로 겨울을 났구나. 저 중동에 전운이 감돌던 2월, 점령군처럼 나는 너의 물관에 드릴을 댔다. 방울방울 떨어지는 수액, 눈물이다. '헌혈 한번 못해본 내가 수액을 빨다니...' 구토다. 마른 잎 짓이겨 상처를 막았다. 도시들 바스러지는 3월, 신음이 멎었는지 가지가지 혈색이 핀다. 눈웃음 같은 이파리들 무성히 돋아날까.
나무야 정말 미안하다 너를 채혈해 갈증을 풀다니
작가 (2003년 여름호)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서광일 시인 / 부재(不在) 외 3편 (0) | 2022.02.11 |
|---|---|
| 황규관 시인 / 발을 씻으며 외 4편 (0) | 2022.02.10 |
| 허순위 시인 / 가장 쓸쓸한 역 외 4편 (0) | 2022.02.10 |
| 김경주 시인 / 나는 지금 태양을 채집한다 외 1편 (0) | 2022.02.10 |
| 금기웅 시인 / 반성 외 3편 (0) | 2022.02.10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