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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초선 시인 / 사람이 그리운 날
마음 지독히 흐린 날 누군가에게 받고 싶은 한 다발의 꽃처럼 목적 없이 떠난 시골 간이역에 내리면 손 흔들어 기다려 줄 한 사람 있었으면 좋겠다.
그 사람 우체통같이 내 그리운 마음 언제나 담을 수 있는 흙내음 풀냄새가 아름다운 사람
그런 사람 있었으면 좋겠다. 참 좋겠다. 하늘 지독히 젖는 날 출렁이는 와인처럼 투명한 소주처럼
취하고 싶은 오솔길을 들면
기다린 듯 마중하는 패랭이꽃 같은 제비꽃 같은 작은 미소를 가진 한 사람 있었으면 좋겠다.
그 사람 빈 의자처럼 내 영혼의 허기 언제나 쉴 수 있는 등대 같은 섬 같은 가슴이 넉넉한 사람 그런 사람 있었으면 좋겠다. 참 좋겠다.
시집 『구멍』 , 맑음, 2005
강초선 시인 / 취하고 싶은 날의 노트
취하고 싶은 날은 부드럽고 향긋한 향기로 혀끝을 애무하는 너를 생각한다
움직이는 의식의 중심에 너를 세우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화려한 잔에 너를 담아 내 외로움의 잔을 가득 채우고 싶구나
어두운 내 그림자를 휘감아 도는 따스한 너의 체온은 파르스레 식어 가는 고독의 실핏줄에 뜨거운 불을 당기고 촛불 끝에 활활 타오르는 너를 미치도록 마시고 싶구나
꿀벌처럼 잉잉거리는 달콤한 속삭임이 生의 어둠을 핥아 내리는 뜨거운 너의 열기에 몽롱한 내 의식은 그만 쓰러져 눕는다
강초선 시인 / 공원묘지
그 곳은 봄, 빵냄새가 진동했다. 빵냄새 나는 봄을 손바닥 올려놓고 만지작거리는 솔바람 허파 깊숙이 들이마시고 가만가만 부풀어오르는 묘지들, 빵공장에서 잘 발효시킨 호빵 같다. 자동차 한 대 지나가고 상여꾼 요령소리 지나가고, 산 하나 무너지고 뿌리 째 뽑혀진 나무들 흔적 없이 잘 닦여진 진열대 위로 날마다 늘어만가는 호빵들, 뜨거운 불가마에서 스스로 익지 못한 사각의 기억들 저 어둡고 눅눅한 땅의 뿌리 밑에서 망각의 심연을 건너 제 각각 흙으로 돌아간 그대 둥근 영혼들, 껍데기가 없는 세상은 말이 없다 고요하다. 언젠가 벗어 던질 껍데기를 다듬고 살찌웠던 빛살무늬 촘촘한 시간들 곱게 갈아 날리는 허공을 부유하는 먼지알갱이, 마른 풀씨 흔들어 영산홍 꽃망울 터뜨리는 그 곳은 언제나 봄, 따스한 햇살 손 내미는 봄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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