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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국 시인 / 엉겅퀴
쉽사리 야생의 꽃은 무릎 꿇지 않는다.
빗물만 마시며 키운 그대 깡마른 반골(反骨)의 뼈
식민지 풀죽은 토양에 혼자 죽창을 깎고 있다.
고정국 시인 / 민들레 행복론
뜰 듯 가라앉고 앉을 듯 다시 뜨는 새끼 새 행보에서 날개 터는 법을 배워 벼랑 끝 민들레 송이가 꽃씨들을 깨울 때
까만색 자궁 하나를 낙하산에 묶어놓고 바람아 날 데려가, 바람아 날 데려가! 아득한 착지점까지 바람에게 맡기며
"왜 살아?" 묻는다면 피식하고 웃고 마는 "죽지 못해 사노라"는 그 말 꾹꾹 삼키면서 길가에 민들레꽃이 바람에게 전한다
사람이 말을 참아, 사람이 욕심을 참아 정녕 그로 하여 사람이 웃는다면 길섶에 민들레 불러 그 웃음을 배운다면
빗물만 마시고도 원망 한 번 않고 사는 낮은데 살면서도 웃음 한 번 잃지 않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나를 둘러 오리니
하여 '들레'네 식구 그 행복을 배우리라 빗물 반 그늘 반 멸시 반 배고픔 반 붕 하고 하늘로 뜨는 그 씨앗을 보리니
고정국 시인 / 탈옥을 꿈꾸며
스스로 갇혀 사는 창살보다 더한 감옥 더 먼 곳 더 깊은 곳 그 감옥에 갇히기 위해 오늘도 갇혀 삽니다, 시조 삼장 육구의
강낭콩 콩깍지에 강낭콩이 숨어서 크듯 삼장 육구 열두 음보에 숨어있는 하늘의 마음 그곳을 찾아 삽니다, 그 사슬에 묶여서
자신에게 묻습니다, 네 장점이 무어냐고 또 내게 묻습니다, 네 단점이 몇이냐고 묶다가 풀다가 하며 내 포승을 놓습니다
좋은 책 좋은 스승은 가둬두지 않습니다 좋은 법 좋은 길은 가둬두지 않습니다 차라리 제 몸을 풀어 길을 더욱 밝힙니다
그래서 나의 포승은 내 안에 꽉 차 있습니다 열 번 묶고도 남을 그 포승에 다시 묶여 오늘도 아픈 몸 이끌고 시를 찾아 나섭니다
시는 나의 감옥이며 해방구라 말합니다 시는 나의 반쪽이며 목적이라 말합니다 세상에 아름다운 포승 그 포승이 좋습니다
오월도 막바지에 여름처럼 덥습니다 더운 길 한참을 걸어 연금 받고 왔습니다 이 달도 구만 육천 원 기초 삶을 산답니다
메추리 알 대여섯 개 플라이를 해두신 하늘 저녁 산책길에 개망초꽃을 보았습니다 때맞춰 새하얀 얼굴 보름달이 오릅니다
풋고추 메추리알 그 작은 걸 왜 먹나요? 먹을 거 넘쳐나는 대한민국 이 땅에서 작은 거 금기시 하는 그도 감옥이랍니다
생명을 중시하며 생명을 먹습니다 먹어서 내 몸속에 그 생명을 가꾼다는 희한한 나의 논리에 들꽃들이 웃습니다
웃다가 꽃을 보면 저도 내가 되겠다며 차라리 나를 먹어 제가 시인이 되겠다며 오늘도 카메라 속에 잠복하고 있습니다
고정국 시인 / 문어를 삶으면
요즘 문어들은 백 개 넘는 발이 있어
빵가게 구멍가게 이쑤시개 수입까지
그래서 문어를 삶으면 다리부터 자른다
고정국 시인 / 삽을 씻으며
나보다 삽을 먼저 씻는다. 시린 물 속에 삽날과 손을 담그고 한 해 저물도록 피와 땀을 쏟았던 흙 묻은 살갗들을 어루만진다. 삽질한 만큼 거둔다는 약속이야 그렇지만 저기압의 일기예보 따마다 뼈와 근육이 따로 뒤척이는 이부자리에 밤새도록 파고드는 물파스 냄새를 너는 안다 너는 안다. 무 농사 배추 농사 때로는 자식 농사의 밭떼기 거래가 끝나고 진눈깨비 농로길로 돌아온 밥상머리에 아들이 흘린 밥알을 주워먹는 아홉 개 반 지문 없는 내 손가락의 내력을 너는 안다 너는 안다. 세모 때면 들판으로 눈이 내리고 추곡수매를 거절당한 노적가리마다 시름이 쌓이면 협동조합에서 지급받은 새 영농수첩에다 서울 간 혈육의 산번지 주소를 옮겨 적는다. 그러나 삽이여 녹슬기보다는 부러지기를 갈구하는 삽이여 칼날보다도 휘장보다도 더 숭고한 너의 번득임을 나는 안다 나는 안다. 새해에도 거듭 새해에도 너와 내가 일궈야 할 이 땅 어드메 가슴처럼 뜨거운 영토가 기다리고 있음을 너는 안다 너는 안다. 녹슬기보다 차라리 부러지기를 갈구하는 삽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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