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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권현형 시인 / 어떤 콤플렉스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2. 10.

권현형 시인 / 어떤 콤플렉스

 

 

벌리지도! 오므리지도 못하고!

카메라 앞에 서면

또 주눅이 든다 묘하게

일그러진 입, 입으로 카메라 앞에 선다

 

내 상한 영혼의 늑골

마디마디 속속들이

드러낼지도 몰라 그럴지도 몰라

위 옆 어딘가 징그럽게

매달려 있을 슬픔의 덩어리

찬찬이 또렷이 찍어낼지도 몰라

 

그럴지도! 몰라! 삼류 극장의 어둠 속에

몰래 버리고 오고 싶은

욕망의 심줄 창살처럼 드러낼지도 몰라

섬뜩하게

 

 


 

 

권현형 시인 / 달콤한 인생

 

 

이마 흰 사내가 신발을 털고 들어서듯

눈발이 마루까지 들이치는

어슴푸른 저녁이었습니다

어머니와 나는 마루에 나앉아

밤깊도록 막걸리를 마셨습니다

설탕을 타 마신 막걸리는 달콤 씁쓰레한 것이

아주 깊은 슬픔의 맛이었습니다

자꾸자꾸 손목에 내려 앉아

마음을 어지럽히는 흰 눈막걸리에 취해

이제사 찾아온 이제껏 기다려 온

먼 옛날의 연인을 바라보듯이

어머니는 젖은 눈으로

흰 눈, 흰눈만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초저녁 아버지의 제삿상을 물린 끝에

맞이한 열다섯 겨울

첫눈 내리는 날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지나간 사랑을 그리워하며

나는 다가올 첫사랑을 기다리며

첫눈 내리는 날이면

댓잎처럼 푸들거리는 눈발 속에서

늘 눈막걸리 냄새가 납니다

 

시집 <중독성 슬픔>

 

 


 

권현형 시인

1966년 강원도 주문진 출생. 강릉대 영문과 졸업. 경희대 대학원 국문과 석사, 박사 과정 수료. 1995년 《시와 시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중독성 슬픔』(시와시학사, 1999)과 『밥이나 먹자, 꽃아』(천년의시작, 2006) 가 있음. 2006년 한국 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금 수혜. 2009년 제2회 미네르바 작품상 수상. <시와시학 젊은 시인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