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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박건호 시인 / 무지개 사냥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2. 11.

박건호 시인 / 무지개 사냥

 

 

어느 날 문득

나는 거울 앞에 서서 타인을 바라본다

거기는 내 모습이 없다

낯선 표정 위에 바람이 불고

어느 덧 나는 이방의 거리로 밀려온다

 

무지개를 잡으려고 쫓아 가다가

숲을 잃어버리고

지금은 도시 한 복판에 서 있다.

 

화려할수록 초라해지는 자신을 느끼며

누군가를 불러본다

혼자라는 것은 얼마나 쓸쓸한 일인가

떠나간 사람들을 생각한다

옆에 앉아서 다른 세계를 사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집착하지 말자

우리가 아는 것은 허상이고

우리가 쫓는 것은 욕심이다

사랑도 결국은 흘러가는 것

우리는 날마다 사랑을 확인하면서도

조금씩은 목말라 한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뱀의 껍질 같은 순간들을 남겨 둔 채 모든 것은 사라지고

여기에 남은 것은 그리움일 뿐이다

 

나는 우연히 만난 옛사람의 표정에서

죽어가는 시간들을 본다

그러나 하늘에 무지개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나는 오늘도 개울 건너 무지개를 향하여

활시위를 당긴다

 

 


 

 

박건호 시인 / 모자이크

- 심장병동에서

 

 

얼마 전에 가슴 뼈를 톱으로 자르고  

심장으로 통하는 두 개의 관상동맥을 교체했다

옛날 같으면 벌써 죽어야 했을 목숨

그저 황송할 따름이다

어릴 때는 생각이나 했던가

팔이 부러지면 다시 붙듯

목숨은 다 그런 것인 줄 알았다

사금파리를 딛어 발이 찢어졌을 때는

망초를 바르고

까닭없이 슬퍼지는 날이면 하늘을 보았다  

그러나 나는 커가면서 계속 망가져 갔다  

오른 쪽 수족이 마비되고  

언어장애가 일어나고

아무 잘못도 없이 시신경이 막히면서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되었다

설상가상

어릴 때부터 아파오던 만성신부전이 악화되어

콩팥도 남의 것으로 바꿔 달았다

누구는 나를 인간승리라고도 하지만

이건 운명에 대한 대반란이다

신이 만든 것은 이미 폐기처분되고

인간이 고쳐 만든 모자이크 인생이다

그렇다고 나를 두고

중세기 성당 벽화를 생각하지는 마라

모자이크가 얼마나 눈물겨운 것인지

너희들은 모른다

신촌 세브란스병원 심장병동에서

톱으로 자른 가슴 뼈를 철사줄로 동여 매고

죽기보다 어렵게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을

구소련 여군 장교같은 담당 간호사도 모른다

밤새 건너편 병실에서는

첨단의학의 힘으로 살아나던 환자가  

인간의 부주의로 죽어 나갔다  

나는 급한 마음에 걸어온 길을 돌아다 본다

그러나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박건호 시인, 작사가.

1949년 강원 원주시 출생. 데뷔-1972년 가요 '모닥불' 작사. 1985. 한국방송협회 주최 아름다운 노래 대상 수상. 2007년 12월 9일 별세(향년 58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