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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천학 시인 / 시인 허홍구를 말한다
비가 쏟아지는 날 천둥번개가 치면 지은 죄업 때문에 문 밖 출입을 삼가 한다는 남자 저놈 잡아라하고 찾아올 여자들 때문에 T.V 에는 절대로 출연을 못한다며 너스레를 떠는 남자
가슴이 펄펄 끓어서 찬물만 마신다하고 속이 달아 설탕을 먹지 않는다 하고 단물만 빨아먹고 뱉는 것이 싫어 껌을 씹지 않는다는 사람
목욕 할 때와 바람피울 때는 전화를 못 받는다고 예고하는 싱거운 사람 바람둥이란 소문이 있는데도 그의 애인이 누구인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고 끊임없이 호감을 갖게 하는 중년남자 그는 늘 바람을 일으킨다.
참치회는 좋아한다면서도 접시 위에 꿈틀거리는 활어 회를 보고는 불쌍해서 못 먹겠다는 맘 약한 남자 앞머리가 많이 빠지고 술을 좋아하는 시인 그의 선한 눈빛에 수많은 여자들이 빠져 죽었다.
권천학 시인 / 6월의 노래
호박꽃 초롱에 개똥불 밝히고 남몰래 외로움을 키우던 아들아 청보리 익히는 바람결에 역사의 늪은 길어만 가는데 잊어서는 안 된다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유월의 들녘에 귀 기울이면 들려오는 소리 산과 들 어디에도 뼈를 깎는 소리 오장(五臟)이 떨려 말 할 수 없어
초여름 보리누름에 오금이 쑤셔 밭둑길 내닫던 아들아 보릿고개 허기를 샘물에 동동 타 마시고 청올치 질긴 가닥으로 살았던 우리네 목숨 누구라도 삐비꽃 피는 언덕에서 풀꾹새 우는 소리를 눈물로 듣지 않으랴
잡초 우거진 골에 속절없이 바람만 불어 개구리 논빼미 물꼬 터놓고 눈물 고인 목울대 씻어내어도 아물길 없는 그날의 아픔 아카시아 꽃자리 메우며 차오르는 나이 언젠가 그 언젠가 돌아와 서야 할 그대들의 자리 벼가 자라고 있는 들녘에 서면 살아있는 목숨이 부끄러워.
권천학 시인 / 노숙
꽃자루의 행랑채 씨앗의 숨소리가 들리는 이슬의 집에서 하룻밤
어둠 깊은 씨방에서도 하룻밤
태풍의 눈 기막힌 고요 속 절벽에서도 하룻밤
월식(月蝕)의 일그러진 비탈 비좁은 들창 넘어 종점 없는 바람의 길로 흘러들어가는 풍찬노숙(風餐露宿)의 목숨 한나절
권천학 시인 / 모자를 쓴 시간이 대문 밖으로
봄이면 모자를 눌러 쓴 시간이 대문 밖으로 걸어 나간다 나뭇가지에도 걸터앉고 풀잎더미에도 주저앉는다
웅덩이에 고여 있는 한 떼의 시간들이 태엽을 탱탱하게 조여 감아서 쏘아대는 빛 화살
속눈썹에 엉겨 붙은 해의 살 들이 오랜만의 외출을 눈부시게 한다
그늘 속을 관통할 때마다 나뭇가지에 걸려있는 시간들이 푸득거리고 주저앉아 있던 풀잎들도 일어나 재깍초깍재깍초깍재깍재깍초깍초깍재깍초깍..... 싹트는 소리로 초침을 닦기 시작한다
모자를 벗어들고 돌아온 봄외출이 불면의 의자에 앉아 따라 마시는 시간의 즙 황금잔 속의 혁명을 지켜보는 봄 그리고 밤
권천학 시인 / 탈출하고 싶다
탈출하고 싶다 시멘트골조 딴딴한 허공 심장의 고동소리와 맥박소리를 엿듣는 벽 속의 귀 숨 막히는 빈 집으로부터
파헤쳐진 길바닥과 열려있는 맨홀속의 궁창으로부터
가던 길 돌려세우는 U턴의 횡단보도 앞에서 쓰레기 매립지로 떠나는 무쇠트럭 하수종말처리장으로 밀려가는 합성세제 거품으로부터 시립병원 영안실로 끌려가며 내지르는 소름 돋는 미움미움미움미움.....
탈출하고 싶다 찌그러진 동전으로 채워지는 공중전화 푸른 낙엽의 거리 깡통들이 굴러다니는 도시로 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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