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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홍관 시인 / 대검으로 쑥을 캐다
각개전투였지. ……착검을 하고 달리다가 …… '엎드려 쏴' 자세를 취했는데 …… 총구 옆에 …… 우윳빛 뽀얀 솜털로 하늘거리는 쑥을 보았어. …… 갑자기 나는 이차돈의 순교와 …… 목에서 솟아났다는 우윳빛 피가 생각나고 …… 자꾸만 생각나고 …… 대검은 '돌격 앞으로'보다 쑥을 캐고 싶어했고 …… 나는 저물어 가는 봄날 …… 어머니한테 …… 쑥국을 끓여 달래고 싶었어.
서홍관 시인 / 물짜
아버지는 토마토를 사도 꼭 물러터진 것이나 말라비틀어진 것들을 사 오셨다.
물짜를 사 왔다고 어머니가 한마디 하시면
"그 리아카는 아무도 안 사드라. 그리서 물건 갈아주니라고 그맀어어."
― 시집 『우산이 없어도 좋았다』(창비, 2020)
서홍관 시인 / 옴마 편지 보고 만이 우서라
어느 해 늦가을 어머니께서는 평생 처음 써보신 편지를 서울에서 대학 다니는 자식에게 보내셨지요.
서툰 연필 글씨로 맨 앞에 쓰신 말씀이 "옴마 편지 보고 만이 우서라."
국민학교 문턱에도 못 가보셨지만 어찌어찌 익히신 국문으로 "밥은 잘 먹느냐" "하숙집 찬은 입에 잘 맞느냐" "잠자리는 춥지 않느냐"
저는 그만 가슴이 뭉클하여 "만이" 웃지를 못했습니다. 오늘 밤에는 그해 가을처럼 찬바람이 불어오는데
하숙집 옮겨 다니다가 잃어버린 편지는 찾을 길이 없습니다.
하릴없이 바쁘던 대학 시절, 겨울이 다 가고 봄이 올 때까지 책갈피에 끼워두고 답장도 못 해드렸던 어머님의 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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