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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최우서 시인 / 펜로즈 계단*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2. 13.

최우서 시인 / 펜로즈 계단*

 

 

느린 나를 입고 어둠이 서 있었다

 

혈관 같은 통로가 넓혀지지 않을 때,

눈꺼풀 위로 펼쳐지는 펜로즈 계단이 있었다

 

이미 몇몇은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아니 내려가고 있다고 해야 하나

 

아파트 계단을 오르며 한 칸 한 칸 가쁜 숨을 삼킬 때마다 근육이 부풀어 오르는,

 

뒤꿈치가 들리며 발가락으로 바람 소리를 듣는 여유

 

그 순간은 내가 아니었다

뜨거웠다 내가 아닌 듯 꿈을 장전한 빛은 경계 없이 무한히 타들어 갔다

 

평면에서 나는 늘 어둠이었다

웅크린 채 제자리를 걷고 있는

구석은 자꾸 아팠다

 

오르고 내려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곳이

평면의 통로라니

접힌 노트가 마음의 골목이라니

메마른 시선에 담은 것이

방향을 잃고 밤새 푹푹 빠져드는 사막이었다니

 

아직 고집의 근육이 부풀지 않았다

 

닿지 않던 곳이 뭉클해진다

 

경계 없는 계단을 돌아 나온 지금은 불가능이 사라진 새벽이다

 

*착시현상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모양으로 '불가능한 계단'이라 불리기도 한다

 

시집 『펜로즈 계단』(시산맥, 2021) 중에서

 

 


 

 

최우서 시인 / 데칼코마니

 

 

허술한 틈으로 빛의 색들이 들어찼다

 

네가 끼어들어

내 몸은 완벽하게 너로 복사되었다

비로소 내 전부가 너와 같은 빛이다

 

저 지독한 눈빛은 번거로운 치장 같아

소각장에 어울린다며 태워 버렸다

 

거울의 바깥은 늘 매끄럽고 반질했다

어둠 속에도 빛의 색들이 들어찼다

 

언제나 정돈된 사물로 서 있는 너

어느 밤에는 불안이 너의 반쪽

섞여서 불투명한 달빛에도 숨기고 싶은

 

쌓인 것을 선뜻 정리하지 못하는 옷방처럼

너무 닮아서 우리는 우리를 위로할 수 없었다

 

시집 『펜로즈 계단』(시산맥, 2021) 중에서

 

 


 

최우서 시인

2021년 《문학과 의식》으로 등단. 시집으로 『펜로즈 계단』(시산맥, 2021)이 있음. 경북일보 문학대전 외 수상. 시산맥시회 정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