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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신용선 시인 / 연가(戀歌)-2 외 3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2. 13.

신용선 시인 / 연가(戀歌)-2

 

 

그대가 부르면

불맞은 山처럼 무너지리.

 

독묻은 먹이가 놓인 눈밭을

외발로 건너온

새가 되어

 

그대 앞에 떨어지리.

 

그대가 부르면

작은 입김으로 더워지는

연한 몸을

 

칼날의 바람 끝에

버리고 있으리.

 

 


 

 

신용선 시인 / 암초

 

 

아무도 나를 찾지 못한다.

밤낮없이 머리 위에서 찰랑거리는 물결

밖으로

내가 모가지를 내밀 때에만

나는

섬이므로

 

죽을 힘을 다해 내가

바닥에 발끝을 세우지 않으면

발끝으로 서서 물 밖으로 모가지를

내밀지 않으면

나는

암초일 뿐이므로

 

 


 

 

신용선 시인 / 꽃씨

 

 

동네 슈퍼에서 사은품이라며

비닐봉지에 담긴 봉숭아 꽃씨를 주길래

거렁뱅이 눈꼽 같은 말라비틀어진 까만

티들이

무슨 꽃이 된다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으나 버리는 셈으로

굴러다니는 빈 화분에다 그것들을

쏟아두었습니다.

그런데 꽃이 피었습니다. 세상에, 베란다 구석에

밀쳐두고 잊었던 화분 가득

연분홍 들불 같은 봉숭아가 만발한 것입니다.

슈퍼에서 꽃씨 봉지를 또 얻었습니다.

나는 손바닥 위에

거렁뱅이 눈꼽 같은 까만 티들을 올려놓고

이번에는 조물주 흉내를 내며

혼자 숭물스런 미소를 지어 보았습니다.

 

이것들에게 세상을

보여, 말어?

 

-시집 「하산하는 법」중에서

 

 


 

 

신용선 시인 / 쓸쓸한 일 1

 

 

아름답던 것들을 보며

아름다움은 참 쉽게 상한다는 것을

깨닫는 일은

쓸쓸하다

아름답던 여인을 보며

지금도 아름답다고

말하는 일은

쓸쓸하다

먼발치네서 누구를 바라보는 일만으로

가슴이뛰던 시절이 있었음을

생각하는

일은

 

 


 

신용선(申龍善) 시인(1945~2008)

1945년 전남 해남 출생. 동국대 국문학과. 86년 『心象』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두고 가는 길』 『下山하는 법』. 제17회 동국문학상 수상. 2008년 5월 5일 지병으로 별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