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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선 시인 / 연가(戀歌)-2
그대가 부르면 불맞은 山처럼 무너지리.
독묻은 먹이가 놓인 눈밭을 외발로 건너온 새가 되어
그대 앞에 떨어지리.
그대가 부르면 작은 입김으로 더워지는 연한 몸을
칼날의 바람 끝에 버리고 있으리.
신용선 시인 / 암초
아무도 나를 찾지 못한다. 밤낮없이 머리 위에서 찰랑거리는 물결 밖으로 내가 모가지를 내밀 때에만 나는 섬이므로
죽을 힘을 다해 내가 바닥에 발끝을 세우지 않으면 발끝으로 서서 물 밖으로 모가지를 내밀지 않으면 나는 암초일 뿐이므로
신용선 시인 / 꽃씨
동네 슈퍼에서 사은품이라며 비닐봉지에 담긴 봉숭아 꽃씨를 주길래 거렁뱅이 눈꼽 같은 말라비틀어진 까만 티들이 무슨 꽃이 된다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으나 버리는 셈으로 굴러다니는 빈 화분에다 그것들을 쏟아두었습니다. 그런데 꽃이 피었습니다. 세상에, 베란다 구석에 밀쳐두고 잊었던 화분 가득 연분홍 들불 같은 봉숭아가 만발한 것입니다. 슈퍼에서 꽃씨 봉지를 또 얻었습니다. 나는 손바닥 위에 거렁뱅이 눈꼽 같은 까만 티들을 올려놓고 이번에는 조물주 흉내를 내며 혼자 숭물스런 미소를 지어 보았습니다.
이것들에게 세상을 보여, 말어?
-시집 「하산하는 법」중에서
신용선 시인 / 쓸쓸한 일 1
아름답던 것들을 보며 아름다움은 참 쉽게 상한다는 것을 깨닫는 일은 쓸쓸하다 아름답던 여인을 보며 지금도 아름답다고 말하는 일은 쓸쓸하다 먼발치네서 누구를 바라보는 일만으로 가슴이뛰던 시절이 있었음을 생각하는 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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