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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수 시인 / 부른다는 말속엔
오랜만에 만났다 우여곡절 끝에 아들을 얻은 친구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또 보자 악수하면서 아이 돌 때 잊지 말고 연락해 그래야지 그럼 당연히 불러야지 하던 그때 아. 내 속 어딘가에 갑자기 화악 불 들어왔다 불러야지 하는 말이 이상하게도 불 넣어야지 하는 말로 들렸던 것이다 와서 술도 마시고 노래도 좀 불러라 했을 때 그 불러라 하는 말도 꼭이나 불 넣어라 하는 말로 들렸다 불러라 노래 불러라 하는 동요가 생각나고 불 넣어 주면 금방 타오를 듯한 응원가를 아이 앞길에 훅훅 불어주고 싶었다
부른다는 말이 이렇게나 뜨겁다는 걸 알게 해준 친구야 사람 사이만한 아랫목이 어디 있겠니 불 지피지 않으면 냉골이 되는 거지 가마, 꼭 가마
이진수 시인 / 센 놈
비얌이 우예 센지 아나 내사마 모르겠다 우예 센 긴데 참말 모르나 그놈이 센 거는 껍데기를 벗기 때문인기라 문디 자슥 껍데기 벗는 거하고 센 거하고 무신 상관이가 와 상관이 없다카나 니 들어 볼래 일단 껍데기를 벗으모 안 있나 비얌이 나오나 안 나오나 나온다카고 그래 씨부려 봐라 그라모 그기 껍데기가 진짜가 시상 새로 나온 비얌이 진짜가 문디 시방 내를 바보로 아나 그기야 당연지사 비얌이 진짜제 맞다 자슥아 내 말이 그 말인기라 껍데기 벗어던지고 진짜 내미는 놈 그런 놈이 센 놈 아이겠나 넘 몰래 안창에다 진짜 감춘 놈 그런 놈이 무서븐 거 아이겠나 어떻노 니캉 내캉 홀딱 벗어 뿔고 고마 확 센 놈 한번 돼 보까
이진수 시인 / 배꼭지
배에게는, 배꼭지가 생명이다
배나무의 모든 것들이 배꼭지를 지나서 배가 되었다
나도 저 줄에 연결되어 있었다 어머니가 꾸욱 눌러 찍은 배꼽
어머니의 모든 것들이 나에게 올 때도 저 다리를 건넜다
다리 저 쪽과 이쪽을 잇고 있는 탯줄들은 다 그렇게 가늘고 짧고 짠한 것인지
익은 뒤에는 툭, 끝도 없이 떨어지는 배꼭지 근처.
이진수 시인 / 딸부잣집 낙수소리
내 말이 그말이어유 글쎄 저 냥반은 그거시 어째서 그렁가 쇠딱따구리 소리만 났다 허먼 벌떡허니 나가 장작을 패드라구유 굴뚝 모탱이구 마루 밑구녕이구 틈새기 읍시 꽉꽉 쟁여 놨었응게 아매두 부엌아궁이가 그것덜 모다 먹느라구 입깨니 아펐을뀨 산내끼 꼬는 것두 하루 이틀이지 밤 질구 방 뜨건디 저 냥반은 글쎄 바카티만 뜨겁구 안은 안뜨건가 나만 맨날 맷돌 밑짝 맹글데유 웃짝 밑짝 그러다봉게 이리 됐지유
이진수 시인 / 둥근 가족
저 호박들, 내 가족 같구나 얼굴 생김새도 그렇고 둥글둥글 애쓰는 모습이 부모형제 닮았구나
알고 있으리라 저처럼 호박이 되어 먼 길 굴러가는 식구들 모나지 않았지만 둥근 것도 아니어서 한세상 늦도록 부딪히며 길 가는 것이 얼마나 발바닥 쑤시는 일이고 돌아누워 주무르는 일인지 밤새 앓기도 하리라
호박 같이 둥근, 둥글지 않은 세상을 덜컹덜컹 끝도 없이 걸어서 마침내 집에 돌아와 주렁주렁 열린 나의 가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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