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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나태주 시인 / 노(櫓)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2. 15.

나태주 시인 / 노(櫓)

 

 

 아들이 군에 입대한 뒤로 아내는 새벽마다 남몰래 일어나 비어있는 아들방 문앞에 무릎 꿇고 앉아 몸을 앞뒤로 시계추처럼 흔들며 기도를 한다

 

 하느님 아버지, 어떻게 주신 아들입니까? 그 아들 비록 어둡고 험한 곳에 놓일지라도 머리털 하나라도 상하지 않도록 주님께서 채금져 주옵소서

 

 도대체 아내는 하느님한테 미리 빚을 놓아 받을 돈이라도 있다는 것인지 하느님께서 수금해주실 일이라도 있다는 것인지 계속해서 채금(債金)져 달라고만 되풀이 되풀이 기도를 드린다

 

 딸아이가 고3이 된 뒤로부터는 또 딸아이방 문앞에 가서도 여전히 몸을 앞뒤로 흔들며 똑같은 기도를 드린다

 

 하느님 아버지, 이미 알고 계시지요? 지금 그 딸 너무나 힘든 공부를 하고 있는 중이오니 하느님께서 그의 앞길에 등불이 되어 밝혀주시고 그의 모든 것을 채금져 주옵소서

 

 우리 네 식구 날마다 놓인 강물이 다를 지라도 그 기도 나룻배의 노(櫓)가 되어 앞으로인 듯 뒤로인 듯 흔들리며 나아감을 하느님만 빙긋이 웃으시며 내려다보시고 계심을 우리는 오늘도 짐짓 알지 못한 채 하루를 산다.

 

 


 

 

나태주 시인 / 순대국밥집

 

 

마음 허하고

아무 곳에도 기댈 곳 없는 날은

비실비실 저녁 어스름 밟으며

시장골목길 돌고 돌아

허름한 순대국밥집 찾아들어라

 

문을 밀치고 들어서자마자

달겨드는 구수한 음식 내음새

순대국밥 안주하여 막걸리나 소주 마시며

크게 떠드는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 웃음소리

더러는 다투는 소리

그동안 내가 찾지 못하던

세상 살 재미들이 모두 여기

이렇게 깡그리 모여 있었구나

 

종일 두고 무쇠 솥에 국물은 끓고

김은 피어오르고

시꺼매진 벽을 등에 지고 알은 체

보일 듯 말 듯 웃음 짓는 주인 아낙네

순대국밥 마는 일 하나로 저토록

늙어버린 주인 아낙네

내가 그동안 잃어버린 미더운

사람 마음과 사람의 얼굴이

여기 와 이렇게 기다리고 있었구나

 

비록 그들은 날마다 사는 일에 지치고

생채기 받지만

저토록 씩씩하게 자신들의 하루를 잘

갈무리하고 있음이여!

 

 


 

나태주 시인

1945년 충남 서천에서 출생. 1963년 공주사범학교 졸업.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 〈대숲 아래서〉가 당선되어 등단. 저서로는 시집으로 『대숲 아래서』를 비롯, 『누님의 가을』, 『막동리 소묘』, 『사랑이여 조그만 사랑이여』, 『풀잎 속 작은 길』, 『슬픔에 손목 잡혀』, 『산촌 엽서』, 『쪼끔은 보랏빛으로 물들 때』 등과 산문집 『외할머니랑 소쩍새랑』, 『시골사람 시골선생님』, 동화집 『외톨이』 등이 있음. 흙의문학상, 충청남도문화상, 현대불교문화상, 박용래문학상, 시와시학상, 편운문학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