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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류인서 시인 / 물. 꽃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2. 15.

류인서 시인 / 물. 꽃

 

 

대야에 부어둔 섬유유연제

무심코 풍덩 적셔낸 블라우스 앞섶에 뚜렷한 반점을 찍었다

그릇바닥에 물이끼처럼 남아있는

검자줏빛 침전물

 

그럴지도 모르겠다

내가 본 모든 부드럽고 환한 붉음들은

차디찬 응혈에서 출발했을까

너의 연못에 돋아난 둥근 무늬결도

멀리, 중심에서 아련해졌을 때, 비로소 물의 가벼운 날개를 얻었을지

 

내가 아는 어떤 꽃빛깔도

건져낸 핏물 아닌 게 없었으니

너는 어둠을 풀어 만든 새벽,

꽃 피어나듯 바깥으로

바깥으로 풀려난 소용돌이의 보폭은

흔들리는 어떤 이의 마음나빈지

 

 


 

 

류인서 시인 / 새

 

 

솟대마을엘 갔습니다

들머리 총총 장대숲에는

고만고만한 구름의 몸을 입은 물새떼, 간단없이

바람의 물살에 떠밀리면서도

저의 가장 어두운 쪽 하늘에다 부리를 꽂고 앉아

있었습니다

당신은 아슬한 푸른 기류를 탐하는 기러기로

물냄새 그리운 나는 물오리로

앉아 있었습니다

각기 다른 하늘의 번개를 품고 앉아 있었습니다

 

 


 

류인서 시인

경북 영천에서 출생. 2001년 계간 《시와 시학》으로 등단. 시집에는 『그는 늘 왼쪽에 앉는다』(창작과비평, 2005)와 『여우』(문학동네, 2009), 『신호대기』(문학과지성사, 2013)와 『놀이터』 (문학과지성사, 2019)가 있음. 2009년 제6회 육사시문학상, 젊은시인상, 2010년 제11회 청마문학상 신인상, 2013년 대구시인협회상, 2015년 지리산문학상, 2019년 김춘수시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