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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효근 시인 / 어떤 제다법(製茶法)
전주에 가면 茶門이라는 찻집이 있어 그 쥔장은 야생차를 고집하는데 그 냥반 따라 순창 회문산 야생차를 따러 갔다 여린 찻잎 다시 말하면 차의 잎 차의 입, 차의 입술 햇살과 바람과 이슬을 마시는 차나무의 입을 그 야들야들한 갓난 아이의 입술 같은 찻잎을 잔인하게 또옥똑 따는 것을 보고 다시는 차를 마시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 어린 잎순들을 달구어진 가마솥에 넣고 덖어서 꺼내어 덕석 위에 쏟아놓고 손으로 부벼서 찻잎에 상처를 낸다 찻물이 잘 우려나오게 하기 위함이리라 그러기를 아홉 번이라 아아 잔인하고 모진 제다법이여 다시는 차를 마시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렇게 완성된 차를 시음해보시라 갓 만든 차를 다관에 담고 물을 붓자 영영 죽어버린 줄 알았던 찻입들이 잘 익은 물 속에 제가 마신 회문산의 하늘과 구름과 바람을 다 풀어내 놓는데 아홉 번의 가마솥 모진 연단을 연록색 향기로 빚어내 놓는데 그리곤 아무 일 없다는 듯 애초 나무에 매달렸던 그 형상으로 돌아가 물고기처럼 다관 속에 노니는데...... 그 차를 마시고도 그 찻잎의 흉내를 한 자락이라도 내지 못할 량이면 이승에서건 저승에서건 다시는 다시는 차를 마시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복효근 시인 / 탱자
가시로 몸을 두른 채 귤이나 오렌지를 꿈꾼 적 없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밖을 향해 겨눈 칼만큼이나 늘 칼끝은 또 스스로를 향해 있어서 제 가시에 찔리고 할퀸 상처투성이다
탱자를 익혀온 것은 자해 아니면 고행의 시간이어서 썩어문드러질 살보다는 사리 같은 씨알뿐
향기는 제 상처로 말 걸어온다
복효근 시인 / 석류
누가 던져놓은 수류탄만 같구나 불발이긴 하여도 서녘 하늘까지 붉게 탄다 네 뜰에 던져놓았던 석류만한 내 심장도 그랬었거니 불발의 내 사랑이 서천까지 태우는 것을 너만 모르고 나만 모르고...... 어금니 사려물고 안으로만 폭발하던 수백 톤의 사랑 혹은 적의 일지도 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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