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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학 시인 / 누에
아마 내 전생은 축생이었으리 누군가 내 감정을 건드린다면 하루아침에 나는 누에로 되돌아가버릴지 모른다 출퇴근길에 만나는 강변의 야산이 친애하는 벌레처럼 다가오곤 했다 그러고 보니 잠들면 나는 늘상 몸을 뒤척이며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게다가 고기를 멀리하고 나무 그늘의 통통한 물살에 온몸을 자주 맡겼다 잎맥을 거슬러가는 애벌레의 날숨에도 내 생로병사가 느껴진다 실크로드에 병적으로 집착한 것도 수상하다 아니다 고백하자 5령이라는 잠을 자고 나면 누에는 이승과 저승의 해안을 가볍게 날아드는 나비, 더 고백하자 그 나비의 날개라는 반투명이 내 후생임을
송재학 시인 / 닭, 극채색 볏
볏을 육체로 보지 마라 좁아터진 뇌수에 담지 못할 정신이 극채색과 맞물려 톱니바퀴 모양으로 바깥에 맺힌 것 계관이란 떨림에 매달은 鍾이다 빠져나가고 싶지 않은 감옥이다 극지에서 억지로 끄집어내는 낙타의 혹처럼, 숨표처럼 볏이 더 붉어지면 이윽고 가뭄이다
송재학 시인 / 눈의 무게
느티나무 가지에 앉은 눈의 무게는 나무가 가진 갓맑음이 잠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느티나무가 입은 저 흰 옷이야말로 나무의 영혼이다 밤새 느티나무에 앉은 눈은 저음부를 담당한 악기이다 그때 잠깐 햇빛이 따뜻하다면 도레미 건반을 누르는 손가락도 보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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