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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최동호 시인 / 달빛 강물 외 7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2. 16.

최동호 시인 / 달빛 강물

 

 

달빛 강물 건너던 진흙 수레바퀴

물밑 자갈돌에 걸려

잠결에 귀가 뜬 아이가 뒤척거리고

 

찰랑거리는 강물 달빛에 젖어

진흙 수레바퀴

자갈돌에 굽이치는 물소리

젊은 아버지는 돌아올 기척이 없고

그 옛날 어둠 깊은 방 모서리에

치렁하게 서려 있는 울 엄마 머리카락

 

돌아누운 아니는 물결 따라 흐르는데

한숨소리 어둑한

달빛 강물 진흙 수레바퀴 건너가고 있다.

 

 


 

 

최동호 시인 / 소금쟁이 설법

 

 

아무리 휘갈겨 쓰고 다녀도

 

흔적 하나 없다.

 

흰 구름 낙서마저 지우고 가는

 

소금쟁이

 

 


 

 

최동호 시인 / 배꽃 동산

 

 

달빛이 환한

 

배꽃 동산

 

거짓말도 비밀도 다 아름다운

 

세상 너머 세상

 

배꽃 동산

 

 


 

 

최동호 시인 / 여름풀들은

 

 

낫이 베고 간 자리보다

소가 뜯고 간 자리가 더 아픈

여름 간 자리가 더 아픈

여름풀들은

새끼 밴 어미 소보고

올겨울 잘 넘기라고

힘을 내 잘 걸어보라고

자기도 모르면서 젖먹이 풀을

그리면서, 제 몸

아픈 줄 모르는

여름풀들은 발걸음

굼뜬 어미 소 뒷등을

웃자란 손바닥으로 토닥여준다.

 

 


 

 

최동호 시인 / 제왕나비

-아내에게

 

 

파도 위로 호랑무늬 깃을 펼치며

대지를 움켜쥔

나비가 날고 있다.

대양 너머 저 멀고 먼 산 언덕에서

작은 들꽃 무리들이

피었다

지면서

비바람 헤치고 찾아올 나리를 기다리고

구름 뒤의 담은

나뭇잎에 매달려 쪽잠 자며

고치에서 부활하는 영혼을 지켜보고 있다.

 

 


 

 

최동호 시인 / 초승달

 

 

서리 맞는 선승의 콧날은 검푸르다.

 

 


 

 

최동호 시인 / 자객의 칼

 

 

번득인 순간 가로지른 빛

 

검광을 움켜쥔 하늘 아래

 

이승의 꽃잎만 흩날리고

 

하얗게 굳은 검푸른 입술

 

 


 

 

최동호 시인 / 혀의 침묵

 

 

말하지 않고 다물고 있는

혀의

 

침묵보다

 

더 큰

입은 지상에 없다.

 

분노한 입이 감아올린 혀는

하늘에 닿아있다.

 

 


 

최동호 시인, 평론가

1948년 경기도 수원 출생.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고려대학교 대학원 현대문학 박사. 1976년 시집 ‘황사바람’ 첫 출간, 197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평론) 당선, 《현대문학》 추천완료. 이후 ‘시와 시학상 평론상’, ‘편운문학 평론부분 대상’, 만해상 문예부분 대상‘ 등 다양한 수상경력. 현재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 시집 《황사바람》 《아침책상》 《딱따구리는 어디에 숨어 있는가》 《공놀이하는 달마》 《불꽃 비단벌레》 《얼음얼굴》 등. 현대불교문학상, 고산윤선도문학상, 박두진문학상, 유심작품상, 김환태문학상, 편운문학상, 대산문학상(평론부문) 등 수상. 경남대, 경희대, 고려대 교수 역임. 현재 고려대 명예교수 겸 경남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