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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손택수 시인 / 버드나무 강변에서의 악수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2. 16.

손택수 시인 / 버드나무 강변에서의 악수

 

 

버드나무 아래 아이들이 도마뱀을 쫓는다

모래톱에 꼬리만 댕강 잘라놓고

버드나무 썩은 둥치 속으로 사라진

도마뱀은 좀체 고개를 내밀지 않고

초등학교 가족 동반 동창횟날

한쪽에선 빌려온 노래방 기계에 술판이 한창인데

악수를 나눌 때면 늘 가슴이 먼저 아려오던 친구가

돌 갓 지난 아기를 보듬고 온다

의자공장 잔업을 하다 그만 변을 당했어

덕분에 4급 장애인 혜택을 다 받게 되었지 뭐냐

만나고 헤어질 때면, 잡아줄 수 없고

흔들어줄 수 없는 손가락 셋을 흔들며 쓸쓸히 멀어져가던 친구

나는 친구가 제 손 대신 내민

아기의 손가락 다섯을 두 손에 감싸쥔다

그러는 나를 친구는 봄햇살보다 더 환하게 바라보고

버드나무 둥치 속으로 사라진 도마뱀 꼬리처럼

내 딱딱하게 굳은 손아귀 속에 들어와 꼼지락거리는 마디마디

지친 아이들이 잘려나간 도마뱀 꼬리를

모래흙 속에 묻어주고 있는 게 보인다

모래톱날에 드문드문 잘려나간 물줄기는

땅속으로 숨었다가 멀리서 다시 고개를 내밀고

지난 겨울 뭉툭하게 쳐냈던 버드나무

연초록 가지들도 새로 막 흐드러지고 있는 강변

 

 


 

 

손택수 시인 / 시골버스

 

 

아직도 어느 외진 산골에선

사람이 내리고 싶은 자리가 곧 정류장이다

기사 양반 소피나 좀 보고 가세

더러는 장바구니를 두고 내린 할머니가

손주놈 같은 기사의 눈치를 살피고

억새숲으로 들어갔다 나오길 기다리는 동안

싱글벙글쑈 김혜영의 간드러진 목소리가

옆구리를 슬쩍슬쩍 간질러대는 시골버스

멈춘 자리가 곧 휴게소다

그러나, 한나절 내내 기다리던 버스가

그냥 지나쳐 간다 하더라도

먼지 폴폴 날리며 투덜투덜 한참을 지나쳤다

다시 후진해 온다 하더라도

정류소 팻말도 없이 길가에 우두커니 서서

팔을 들어올린 나여, 너무 불평을 하진 말자

가지를 번쩍 들어올린 포플러나무와 내가

어쩌면 버스 기사의 노곤한 눈에는 잠시나마

한 풍경으로 흔들리고 있었을 것이니

 

 


 

손택수(孫宅洙) 시인

1970년 전라남도 담양 출생, 경남대학교 국문학과와 부산대학교대학원 국문학과 졸업. 199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언덕 위의 붉은 벽돌집」으로 등단, 2002년 제2회 부산작가상, 「목련 전차」, 「아버지의 등을 밀며」 등 5편의 시로 2003년 문학세계사가 주관하는 제9회 현대시 동인상을 수상. 첫 시집인 『호랑이 발자국』으로 2004년 제22회 신동엽창작상. 2005년에는 제2회 육사시문학상 신인상, 제3회 애지문학상을 수상. 2007년 시집 『목련 전차』로 제14회 이수문학상 수상. 2013년 제13회 노작문학상에 '저물녘의 왕오천축국전' 등 5편이 선정. 현재 실천문학사 대표로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