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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해 시인 / 깨지지 않는 거울
빗방울들 손과 손을 맞잡고 질펀하게 누워 있다 검은 거울을 만들고 있다 거울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이 거리의 모든 것을 비춘다 먹구름이 지나가고 웅성거리며 가로수들이 걸어들어간다 어깨를 접은 건물이 거울 속에 웅크리고 있다 개미들이 거울을 벗어나기 위해 사투 중이다 거울 한복판에서 죽은 세포를 발견하게 될 때의 경악! 사람들은 오래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붙들리게 된다 거울은 깨져야 한다 깨지는 일만이 유일한 삶의 목표인 듯 빗방울이 떨어질 때마다 거울은 얼굴을 흩뜨리며 깨지는 연습을 한다 그러나 튀어나간 물 파편들은 또다른 거울을 만들 뿐, 복제거울이 판치는 거리를 여자들이 짧은 치마를 움켜 잡은 채 빠르게 귀가하고 있다 비는 점점 거세지고 움푹움푹 골이 패이는 거울 깨질 듯 끝내 깨지지는 못하고 사람들 얼굴에도 들러붙어 번질거리기 시작한다 스크랩된 글은 재스크랩이
문성해 시인 / 외곽의 힘
이 도시의 외곽에는 짐승들이 산다 동쪽에는 개들이 서쪽에는 오리와 타조들이 사료더미를 지고 오는 구레나룻 사내들보다 건강하게 자란다
신도시라 이름하는 이 도시에는 걸리적거린다 하여 전봇대들도 다 땅 속에 숨겨져 있다 공원과 분수가 넘쳐나는 거리 애완견을 모시고 나온 앵무새 같은 여자들이 산책을 한다 늘 중심에 있는 이곳 사람들은 외곽을 까맣게 잊고 산 지 오래,
보신은 늘 중심엔 없는 걸까 가끔씩 보신을 위해 까만 승용차를 타고 사람들이 외곽을 찾는다 쓰레기가 넘쳐나고 비명소리 들리는 외곽에서 서둘러 보신을 마치고 다시 중심으로 돌아간다
썩은 개울가에 몰래 털이 버려지고 커다란 도마가 서둘러 씻겨지는 외곽에서 짐승들은 쉬지 않고 새끼를 낳아 기른다 무법지와도 같은 그곳 아직 비포장인 도로를 한참 들어가면 음식 찌꺼기 냄새와 분뇨내가 코를 찌르는 곳
구레나룻 사내 손목에서 끝끝내 내젓던 모가지의 불거진 힘줄, 중심에서 밀려나고 밀려나도 끝내는 더 넓은 외곽으로 세를 넓히는 외곽의 힘은 바로 저런 것이 아니었을까
외곽은 언제나 중심을 먹여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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