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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달자 시인 / 개가론(改嫁論)
앞으로 살 날이 멀었다면서 나보고 팔자를 고쳐 보라고 하네 내가 알기로 우리말은 망가진 것을 새로 손보는 것을 고친다라고 하지 않는가 내 인생이 그렇게 망가진 것일까 망가진 인생을 고쳐보면 이음새 없이 고쳐지기는 하는 것일까 바늘자국도 못자국도 없이 고쳐지기는 하는 것일까 앞으로 살 날이 멀었다면 그래 그렇지 한번 팔자를 고쳐보는 일 나쁘지 않으리라 그러나 나는 행복의 얼굴을 몰라서 아무거나 행복인 줄 안아버리면 어쩌나 안겨버리고 나서 운명이라고 다시 참고 주저 앉아버리면 어쩌나 달콤한 맛에 내 혀는 우둔해서 행복을 먹여도 맛을 모르면 어쩌나 너는 너무 억울하니 팔자를 고쳐보라는 그 목소리 앞에서 나는 얼른 대답을 못하고 어물어물 절절 쩔쩔 얼굴만 붉히고 있네. 마음으로는 네 네 네 감읍하면서도 왜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나 까짓 거 한번 고쳐 봐도 될 일인데 한바탕 뜨거워져 불이 나도 될 일인데.
신달자 시인 / 산 도적을 찾아서
시름시름 앓는 나를 보고 문정희 시인이 신선생의 약은 딱 하나 산 도적 같은 놈이 확 덮쳐 안아 주는 일이라고 한다 그래 그것도 좋지 나는 산 도적을 찾아 내일은 광화문을 압구정동을 눈웃음치며 어슬렁거려 봐야지 그러나 문시인 높은 빌딩의 엘리베이터나 지하실에서 만나는 기린 목의 얼굴 하얀 사내들 속에 산 도적이 남아 있나 몰라 집 단속은 꼼꼼히 챙기고 밖에서는 아무도 몰래 어쩌구 저쩌구 하고 싶은 속 다르고 겉 다른 남자들 속에 그래도 어딘가 산도적이 숨어 있을까 새 천년의 밀림 속에 밤새 우려 낸 것은 숨은 눈물의 진한 다짐인가 눈부신 하얀 피로 오래 식지 않고 조용히 끓는 설렁탕 한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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