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성우 시인 / 식은밥단술
남은 보리밥과 누룩이 물 자박자박하니 눌려진 독이 부뚜막에 올려져 있었다 하루 이틀 사흘, 밥풀이 녹아 내려 식은밥단술 되었다
하릴없이 얼굴 그을리다 몰려온 아이들은 식은밥단술에 사카린을 탔다 한 모금만 마셔도 밍밍한 여름방학이 달큼해져왔다
니 뺨이 더 뻘겋다 니 뺨이 더 뻘겋다 뒷마당 장독대에는 분홍 주홍 빨강 봉숭아꽃들이 시끌벅적하니 피어 올랐다
다층 2004년 가을호
박성우 시인 / 장독
장 담글 때도 지났는데 투박한 장독 하나가 평상 뒤에 놓여졌다
불룩한 배에는 단아한 山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세 개의 산봉우리를 품고 있던 장독, 뚜껑을 열어 볼까 하다가 담 밖의 아카시아 냄새에 취해 대문 밀쳤다
휴일에 대청소를 하다가 보았다 무릎 높이의 장독 위에 엉덩이를 까고 앉아 있는 어머니, 아카시아꽃들이 키득키득 하얀 이 드러내어 웃는 줄도 모르고 장독에 오줌 누고 계셨다
장독 안에서 익는 것이 어디 간장 된장 같은 것들뿐이더냐 금간 뚜껑 열어 보니 오줌장이 익고 있다 그 옛날 외할머니처럼 앞니 빠진 장독,
제 맛이 날 때까지 오줌장 익혀서 호박넝쿨, 가지, 고추에게 먹일 거란다 오줌 보탤 것 아니면 뚜껑 닫으라 한다 술독도 아닌데 아카시아꽃잎이 띄워진다
<시로 여는 세상 2003 가을호>
박성우 시인 / 삼학년
미숫가루를 실컷 먹고 싶었다 부엌 찬장에서 미숫가루통 훔쳐다가 동네 우물에 부었다 사카린이랑 슈가도 몽땅 털어 넣었다 두레박을 들었다 놓았다 하며 미숫가루 저었다
뺨따귀를 첨으로 맞았다
현대시학 2003년 9월호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배용제 시인 / 한 방울의 고통 외 2편 (0) | 2022.02.16 |
|---|---|
| 반칠환 시인 / 한 걸음 외 2편 (0) | 2022.02.16 |
| 문성해 시인 / 깨지지 않는 거울 외 1편 (0) | 2022.02.16 |
| 신달자 시인 / 개가론(改嫁論) 외 1편 (0) | 2022.02.16 |
| 최동호 시인 / 달빛 강물 외 7편 (0) | 2022.02.16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