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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박성우 시인 / 식은밥단술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2. 16.

박성우 시인 / 식은밥단술

 

 

 남은 보리밥과 누룩이 물 자박자박하니 눌려진 독이 부뚜막에

올려져 있었다 하루 이틀 사흘, 밥풀이 녹아 내려 식은밥단술 되었다

 

 하릴없이 얼굴 그을리다 몰려온 아이들은 식은밥단술에 사카린을

탔다 한 모금만 마셔도 밍밍한 여름방학이 달큼해져왔다

 

 니 뺨이 더 뻘겋다 니 뺨이 더 뻘겋다 뒷마당 장독대에는 분홍

주홍 빨강 봉숭아꽃들이 시끌벅적하니 피어 올랐다

 

다층 2004년 가을호

 

 


 

 

박성우 시인 / 장독

 

 

장 담글 때도 지났는데

투박한 장독 하나가 평상 뒤에 놓여졌다

 

불룩한 배에는

단아한 山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세 개의 산봉우리를 품고 있던 장독,

뚜껑을 열어 볼까 하다가

담 밖의 아카시아 냄새에 취해 대문 밀쳤다

 

휴일에 대청소를 하다가 보았다

무릎 높이의 장독 위에

엉덩이를 까고 앉아 있는 어머니,

아카시아꽃들이 키득키득

하얀 이 드러내어 웃는 줄도 모르고

장독에 오줌 누고 계셨다

 

장독 안에서 익는 것이 어디

간장 된장 같은 것들뿐이더냐

금간 뚜껑 열어 보니 오줌장이 익고 있다

그 옛날 외할머니처럼 앞니 빠진 장독,

 

제 맛이 날 때까지 오줌장 익혀서

호박넝쿨, 가지, 고추에게 먹일 거란다

오줌 보탤 것 아니면 뚜껑 닫으라 한다

술독도 아닌데

아카시아꽃잎이 띄워진다

 

<시로 여는 세상 2003 가을호>

 

 


 

 

박성우 시인 / 삼학년

 

 

미숫가루를 실컷 먹고 싶었다

부엌 찬장에서 미숫가루통 훔쳐다가

동네 우물에 부었다

사카린이랑 슈가도 몽땅 털어 넣었다

두레박을 들었다 놓았다 하며 미숫가루 저었다

 

뺨따귀를 첨으로 맞았다

 

현대시학 2003년 9월호

 

 


 

박성우 시인

1971년 전북 정읍에서 출생. 원광대 문예창작과외 同 대학원 박사학위. 200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거미〉가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거미』 『가뜬한 잠』 『자두나무 정류장』, 동시집 『불량 꽃게』, 청소년시집 『난 빨강』 등이 있음. 신동엽문학상, 윤동주젊은작가상 등을 수상. 우석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