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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영혜 시인 / 소설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3. 8.

이영혜 시인 / 소설

 

 

긴 이야기의 에필로그를 펼친다

 

아무도 모르게 푹 썩어 버린 사랑니 뒷면이 욱신댄다

떨어지지도 못한 계절 끝 낙엽들과

옥탑방 빨랫줄에서 삭아가는 옷가지가 희뿌옇게 흩날린다

 

시큼하게 식어버린 에티오피아 커피에 눈발 내린다

 

기억도 먼 이름들이 소환되어 앉았다 간다

 

덧바른 화장 모공마다 허옇게 들뜬 얼굴이 거울에서 나온다

 

자꾸만 낮아지는 회색 하늘로 흑조들 날아오른다

 

격월간 『현대시학』 2018년 11~12월호 발표

 

 


 

 

이영혜 시인 / 간(間)을 보다

 

 

저쪽 벼랑까지는 출렁이는 외길

서둘러 도착한 저녁은 젖어있고

산과 호수, 고요가 깊다

어둑한 한 쌍이 흔들다리를 건넌다

불안과 견고 위태와 안정 사이

느슨하고도 팽팽한 긴장이 손바닥에 흐른다

걸음을 인도하는 건 믿음

흔들리는 마음을 서로에게 가까스로 붙들어 맨

균형이 미끌, 아찔하다

당신까지의 거리는 언제나 곡선

천천히 흔들리며 조심스레 당도하기로 한다

우리 사이, 출렁다리 위에서

문득 저물어버린다

 

격월간 『현대시학』 2018년 11~12월호 발표

 

 


 

이영혜 시인

서울대 치과대학 및 치과대학원 졸업. 치의학박사.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문창과 졸업. 2008년《불교문예》로 등단. 시집으로 『식물성 남자를 찾습니다』(천년의시작, 2014)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