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배 시인 / 입과 지느러미
입은 흔드는 것인데 그 저녁엔 입을 너무 많이 써서 가슴이 다 닳았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날 때 그 말은 흔들어야 했는데 보내고 흔들리는 방 이 물속에선 지느러미를 쓴다
신영배 시인 / 오후 여섯 시에 나는 가장 길어진다
옥상에 앉아 있던 태양이 1층 유리창으로 내려온다 유리 속을 걷는 구두는 반짝인다
귀가 접힌 어떤 사람들은 계단을 밟고 지하로 내려간다 계단으로는 지상에 없는 음악이 올라온다
작품은 지상에 걸리지 않는다
나의 아름다운 바지는 다리가 하나이다 지퍼 하나, 주머니는 넷
오후 여섯 시에 나는 가장 길어진다
하체가 지하로 빠진 골목은 골반에서 화분을 키운다 지상에 없는 향기가 흙에 덮여 있다
나는 천천히 걸어 여섯 시 꽃에 닿는다 닫히는 문에 손을 찧으며 여섯 시 꽃으로 들어가 여섯 시 꽃에서 나온다
길가에서 아이들이 발끝을 비벼 머리를 지우는 장난을 한다 머리를 지운 아이들은 사라진다
멀리 떨어진 머리를 지우러 나는 길어진 내 그림자 위를 걸어간다
귀가 지하에 잠겨 있을 내 그림자 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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