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혜 시인 / 소설
긴 이야기의 에필로그를 펼친다
아무도 모르게 푹 썩어 버린 사랑니 뒷면이 욱신댄다 떨어지지도 못한 계절 끝 낙엽들과 옥탑방 빨랫줄에서 삭아가는 옷가지가 희뿌옇게 흩날린다
시큼하게 식어버린 에티오피아 커피에 눈발 내린다
기억도 먼 이름들이 소환되어 앉았다 간다
덧바른 화장 모공마다 허옇게 들뜬 얼굴이 거울에서 나온다
자꾸만 낮아지는 회색 하늘로 흑조들 날아오른다
격월간 『현대시학』 2018년 11~12월호 발표
이영혜 시인 / 간(間)을 보다
저쪽 벼랑까지는 출렁이는 외길 서둘러 도착한 저녁은 젖어있고 산과 호수, 고요가 깊다 어둑한 한 쌍이 흔들다리를 건넌다 불안과 견고 위태와 안정 사이 느슨하고도 팽팽한 긴장이 손바닥에 흐른다 걸음을 인도하는 건 믿음 흔들리는 마음을 서로에게 가까스로 붙들어 맨 균형이 미끌, 아찔하다 당신까지의 거리는 언제나 곡선 천천히 흔들리며 조심스레 당도하기로 한다 우리 사이, 출렁다리 위에서 문득 저물어버린다
격월간 『현대시학』 2018년 11~12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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