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이 시인 / 니트 족
싸구려 니트 풀어지는 부모에게 기생하지만 미안하지 않다 빈둥 염치도 없고 빈둥빈둥 상식도 없다지만 세 라비, 그럴 수 있으니까 떨어져나간 보풀처럼 호모인턴스를 거치며 나름 노력했으니 이젠 식구들이 다 나간 소속되지 않은 늘어진 이 아침이 참 좋다
주변인들은 소통이 안 된다고 외면하지만 괜찮다 세 라비, 만원버스에 업무에 시달리며 저들은 꿈이라는 실형을 살고 있으니 자유로운 내가 불어터진 라면 발과 친숙하게 후루룩 거리며 스마트폰에 얼굴을 처박고 시간을 들이마시지만 고독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은 나는 면 인류
게임기 요란한 방문 앞에서 햇빛을 품은 웃는 채널들의 파노라마처럼 돌아가는
- <다층> 2021년 봄
김도이 시인 / 복숭아의 뼈
발목이 보일 만큼만 잘라주세요 기다란 겨울을 재단하니 바지 아래 발그레한 봄이 드러났다
봉긋한 향이 나는 열아홉, 무릉도원이라는 서울로 상경한 솜털 보송한 복숭아, 달콤한 과즙으로 꼬여드는 벌레에 복사꽃을 피우기도 전 심장이 물러버렸다 물컹 물고 놓아주지 않는 붉은 이빨들, 여린 속살까지 파먹으며 과즙을 뚝뚝, 달려들다 안간힘으로 버티던 뼈에 부딪히자 돌아섰다
심장을 닮은 단단한 복숭아 아직 씨앗의 날들이 남아 있어, 새들이 진술하고 빗물 울어주면 치마 속 볼기 같은 복숭아뼈에 볕들고 바람 일렁이면 발목에 심어놓은 당신을 열어 꽃잎 쏟아낼 텐데
잘라낸 바지 단 아래 감춰져 있던, 도화살 같은 봄물 번진다
- 웹진《공정한 시인의 사회》2020년 5월호
김도이 시인 / 2분의 일요일
잠깐 돌아다본 사이 네가 사라졌다
오후가 몰려왔고 공원에는 아침이 천천히 걸어 나간 표정들과 일주일이 일요일이 된 사람들의 불안한 발자국만 찍혀있다
사거리 교회의 헌금 바구니를 중얼중얼 분절된 회개가 채워나가고
너를 다시 비울 때까지
목욕탕 거울이 김 서린 상반신을 비추고 드라이어가 젖은 일요일을 부풀리고 있다 시간은 바람을 어설프게 말려가고 감기는 눈꺼풀을 열어 남은 책을 읽었다
오늘은 문틈만큼 접혀있는데 저녁이 시작되고 길 저쪽 네가 미처 건너려는 정규직에 반쯤 남은 고백이 장미처럼 꺾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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