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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허림 시인 / 눈물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3. 11.

허림 시인 / 눈물

 

 

X - Ray 사진 속에 담겨있는 가슴은

앙상한 뼈의 구조물이다

까만 어둠이다 사랑도 아니고 슬픔도 아닌

내가 이 자리에 서있다는 확인서이다

의사의 말대로 나는 살아 있고 아파하고

사랑하고 그리워하며 그 속에 숨을 불어 넣는다

 

눈물을 보면 가슴이 보인다

참을 수 없이 가벼워지는 슬픔

안으로만 감싸안으려는 가슴을 열고 있다

 

X - Ray가 감지하지 못한 길 끝

문간에 매달린 전등이

죽순처럼 돋아나 푸른 빛을 비출 때

너의 생명처럼 홀가분 날아갈 수 있는 것이 주어진다면

 

눈물을 보면 눈물이 난다

 

시집 - 신갈나무 푸른 그림자가 지나간다 (현대시)

 

 


 

 

허림 시인 / 빙어

 

 

소양강 어디쯤

물속의 길이 보인다던 마을은

오천분의 지도에도 보이지 않았다

이침마다 거룻배를 저으며

빙어잡이 나서는 아버지 눈 속에는

신작로며 미루나무며 대문이며

밥 묻어 놓았던 구들 아랫목도 다 보이련만

비니루로 바람만 막아 놓은

그늘진 방 한켠에는

빙어보다 더 투명한 꿈들이

주름 깊이 머물고

그 사이로 어망을 메고 돌아오는

소양강 어귀쯤

물 속의 길이 다 보인다는 마을에는

저녁안개가 가득 피어올랐다

 

 


 

허림 시인

강원도 홍천 출생. 강릉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 1988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당선, 1992년 『심상』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신갈나무 푸른 그림자가 지나간다』 『노을강에서 재즈를 듣다』 『울퉁불퉁한 말』 『이끼, 푸른 문장을 읽다』 『엄마 냄새』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활동지원금(2007년), 문학나눔 복권기금(2012년, 2013년)을 받음. 현재 한국작가회의 회원, A4동인으로 활동하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