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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효림 시인 / 근대 사진전

by 파스칼바이런 2022. 4. 7.

이효림 시인 / 근대 사진전

 

 

근대가 근사하게 벽에 붙었습니다

 

버스는 노선보다 통통한 건물을 씹으며 갑니다

 

페트병과 싸우던 고양이는 떠나고 총에 맞은 주스는 노랗게 말라붙어 떨고 있습니다 거리에 떨어진 몇 개의 단어로는 과거의 사건을 다 말할 수 없습니다 역사를 목격한 고양이의 시력은 매우 불량했으며 발자국들은 모두 벙어리의 후예들이었습니다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는 낙엽만 벌겋게 휘청거립니다 뉴스들은 참으로 침착하게 어제를 넘깁니다 우리의 주장은 매일 상에 오르는 맹물처럼 느물거립니다 배고픈 아이의 딱딱한 울음이 올해의 사진전에 걸렸습니다 마른 김처럼 펄럭거립니다

 

오십 년의 혁명은 아직도 우울하게 이어지고

화려한 간판 뒤에

덜 자란 소녀가 가출을 가지고 놉니다

때마침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를 탄다면

 

걸어도 걸어도 소녀의 근대는 남았습니다

 

계간 『시와 정신』 2014년 봄호 발표

 

 


 

이효림 시인

경남 밀양 출생. 2007년 ≪시와 반시≫로 등단. 시집으로 『명랑한 소풍』과 『위대한 예측불허』가 있음. 2018년 아르코장작기금 수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