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숙자 시인 / 살아남은 니체들
그들, 발자국은 뜨겁다 그들이 그런 발자국을 만든 게 아니라 그들에게 그런 불/길이 주어졌던 것이다
오른발이 타버리기 전 왼발를 내딛고 왼발 내딛는 사이 오른발을 식혀야 했다
그들에게 휴식이라곤 주어지지 않았다 누군가 도움이 될 수도 없었다 태어나기 이전에 벌써 그런 불/길이 채워졌기에!
삶이란 견딤일 뿐이었다. 게다가 그 목록은 자신이 택하거나 설정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그럴 수밖에 없었으므로 왼발과 오른발에 (끊임없이) 달빛과 모래를 끼얹을 뿐이었다.
우기(雨期)에조차 불/길은 식지 않았다. 혹자는 스스로, 혹자는 느긋이 죽음에 주검을 납부했다… 고, 머나먼… 묘비명을 읽는 자들이… 뒤늦은 꽃을 바치며… 대신… 울었다.
늘 생각해야 했고 생각에서 벗어나야 했던 그들 피해도, 피하려 해도, 어쩌지 못한 불꽃들 결코 퇴화될 수 없는 독백들 물결치는 산맥들
강물을 거스르는 서고(書庫)에서, 이제 막 광기(狂氣)에 진입한 니체들의 술잔 속에서… 마침내 도달해야 할… 불/길, 속에서… 달아나도, 달아나도 쫓아오는 세상 밖 숲속에서.
계간 『시인동네』 2016년 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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