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김미나 시인 / 달과 목련과 거미의 가계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4. 12.

<2015년 진주가을문예 시 당선작>

김미나 시인 / 달과 목련과 거미의 가계

 

 

달 거미 한 마리 지붕을 밟고 목련나무로 걸어와요

 

거미의 집을 허무는 게 아니에요,

물덩이를 만드는 게 아니에요

 

솜 트는 기계 멈춰있는 집 앞의 목련나무

꽃송이 안으로부터 달이 솜털을 짜기 시작했나봐요

자동차 바퀴에 찍힌 고양이 울음소리도 되살아나요

솜이불을 짜는 소리 할머니의 귓바퀴에 감겨요

 

나는 벼락처럼 자라난 목련나무의 꽃과

달의 이빨들이 하나의 틀을 이루는 소리를 생각했어요

 

먹구름을 집어 삼킨 듯 검게 물드는 것들은

솜틀집 앞 배수구에 걸려있나 봐요

그늘 쪽에 얼어있는 지난 봄눈 덩어리들이

아지랑이를 피워 올려요 아직 꽃샘추위는 발끝을

야금야금 베어 물고 있었죠

 

그러니까 목련들도 밤의 이불을 덮고 싶어

나뭇가지 침대에 꼭 맞는 그믐이 올 때까지

 

할머니의 꽃상여를 짜듯

깊은 어둠을 지우려고 달의 이불을 짜고 있나봐요

 

봄눈 녹자 귀신도 볼 수 있다는 물웅덩이엔

달과 목련과 거미가 한 가계(家系)에서 태어났다는

소문이 고여 있었어요 이불 한 채에 그려진 목련나무,

노란 나비들이 먼저 날아와서 날개를 풀고 있었어요

 

 


 

 

2011년 중앙일보 신인문학상 수상작

김미나 시인 / 포란의 계절

 

 

흔들리는 집을 짓는 것들은 날개들뿐이다. 새들의 건축법에는 면적을 재는 기준이 직선에 있다고 나와 있다. 직선은 흔들리는 골재를 갖고 있다. 문 없는 집, 계단 없는 집, 지붕이 없는 집, 없는 게 너무 많아 그 집을 탐하는 것들도 별로 없다.

 

미루나무에 빈집 몇 채 얹혀 있다. 층층을 골라 다세대 주택 같다. 포란의 계절에만 공중의 집에 전세를 드는 새들, 알들이 아랫목처럼 따뜻할 것 같다. 아궁이에선 초록의 연기가 피어 오르고 어둠을 끌어다 덮으면 아랫목에서 날개가 파닥일 것 같다.

 

공중 집을 보면 새들의 작고 뾰족한 부리가 생각난다. 날개에 붙어 있는 공중의 주소, 셀 수 없는 바람의 잔가지들이 엉켜 있어 수시로 드나드는 바람엔 개의치 않는다. 양 날개에 바람을 차고 나뭇가지를 나르던 가설의 건축.

 

쌀쌀한 날씨에 군불처럼 둥지에 앉아 있는 새들.

 

불안한 울음이 가득한 포란의 집. 짹짹거리는 소리가 나뭇가지를 옮겨 다닌다. 직선의 면적에 둥근 방. 문고리가 없다.

 

이제 소란한 공중은 새들의 소유다.

 

 


 

김미나 시인

서울예술대학교 휴학중. 2015년 진주가을문예 시 당선. 제39회 세종날글짓기대회 1등. 제2회 김수영청소년문학상 대상. 2019년 여수해양문학상 1등.